낯선 골목, 저 한편에 노란색 불빛을 뿜어내는 작은집이 있습니다. 유리창 사이로 쓰러질 듯한 책장과 겹겹이 쌓인 책들이 즐비하고, 문을 열면 따뜻한 공기 속에 진한 커피향이 묻어나죠. 삼삼오오 동네 사람들이 모여 책 읽고 커피를 마시는 그곳, 김진양 님의 서점을 찾았습니다.
상암동 책공간 ‘북바이북’
2013년 10월, 상암동에 ‘북바이북’이란 이름의 서점을 열었습니다. 직장 다닐 때도 창업에 관심이 있어서 막연하게 공간구상을 할 때가 많았는데, 마침 출판사로부터 창업과 동업에 관한 글을 써보라는 제안을 받은 거예요. 그래서 1년 동안 창업한 사람들에 대한 인터뷰를 다녔던 것이 큰 계기였어요. 자기 일을 하는 사람을 보면 눈빛이며 말하는 것 하며 그 에너지가 있잖아요. 그 에너지를 받으면서 감탄한 거죠. 당시 직장에서도 콘텐츠 다루는 일을 하고 있었고, 책을 워낙 좋아했기 때문에, 이래저래 고민하다가 제가 사는 동네에 직접 서점을 열기로 마음먹은 거예요.
아무리 좋아하는 일을 준비한다고 해도 그 과정에서 피곤하고 지치게 마련이잖아요. 저 역시 마찬가지였죠. 벤치마킹하려고 일본에
드나들기도 하고, 적당한 공간을 찾아 6개월 내내 발품을 팔아야 했어요. 동시에 아르바이트까지 하느라 하루하루가 진짜 쏟아지는
잠과의 싸움이었죠. 그런데 제가 찌인-한 아메리카노를 엄청 좋아해요. 커피에 조예가 있어서 원두를 골라 먹는다는 둥 그런 것은
아니고, 대용량 머그컵에 일회용 커피든 뭐 다른 커피든 일단 진하게 많이 타서 ‘수혈’하듯 마시는 게 습관이죠. 마신다기보다는
들이켜요. 하하. 때마다 늘 사용하는 컵이 이 머그컵입니다. 보시다시피 엄청 대용량이죠.
긍정의 주문을 외워라!
이 머그컵을 얻은 건 2009년에 홀로 떠났던 뉴욕여행에서인데, 당시 ‘메리 포핀스’라는 뮤지컬을 보고 정말 감동한 나머지 극장에서 산 기념품이에요. 새로운 콘텐츠에 목말라 있던 시점에 만나 거의 전율했던 날이라 여전히 기억에 남거든요. 서점 문을 열 때도 <메리 포핀스> 원작 소설을 구비해놨고, 월트 디즈니나 공연 관련 책도 많이 구비한 이유죠. 여하튼 극 중에 “슈퍼칼리프라질리스틱익스피알리도~!”라는 긍정의 주문이 여러 번 나오는데, 그 주문을 외우면 안 풀리던 일도 술술 풀리게 돼요. 바로 이 컵에 새겨진 주문이 그거예요.
저 역시 스트레스가 쌓일 때마다 여기에 커피를 가득 담아 마시며, 주문을 한 번씩 외워보곤 합니다. 평범한 머그컵이 아니라 나만의 이야기가 담겨 있는 특별한 컵이죠. 힘들 때마다 긴 시간 함께해온 컵이니까요.
동네를 품는 서점이 되기를
그 주문 덕인지. 어쨌든 제 꿈이 이뤄진 것 같아요. 직장생활을 하던 어느 무렵, ‘아 그냥 평생 북카페에서 글이나 쓰며 살면 좋겠다.’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있었는데, 어느 순간 제가 그러고 있더라고요. 처음 시작하는 서비스업인데도 오히려 제 몸에 맞는 옷을 입은 기분이거든요. 하고 싶은 일을 지금 하고 있으니까 힘들어도 불평하는 게 오히려 이상해진 거예요.
여기 자주 오시는 분들이 상암동 동네 분들인데, 저보고 다들 그러세요. 여기서 오래 일하시면 좋겠다고. 앞으로도 상암동뿐만 아니라 각 동네의 색이 있는 서점이 생겨나면 좋겠다 싶었어요. 좋은 전례가 될 수 있도록 오래도록 운영하는 게 지금 제가 가진 유일한 바람입니다.
슈퍼칼리프라질리스틱익스피알리도!
서점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주문을 따라 외워봅니다. 책과 커피와 포근한 동네 사람들이 머무는 그곳이라면 누구나 ‘나만의 주문’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주문을 외다 보면 김진양 님처럼 어느 순간 꿈을 이룬 자신을 만날 수 있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