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집을 만드는 어떤 질문, 건축가 정영한

건축가 정영한
 
“최소의 집을 짓고 최대의 행복을 채우다.” 정영한 아키텍츠의 정영한 소장은 이렇게 말한다. 크거나 화려한 집만이 최고라 여겼던 우리에게 그는 ‘뜻밖의’ 집 이야기를 들려준다. 각자의 이야기로 완성되는 정 소장의 행복한 집 이야기를 지금 시작한다.

 
 

‘다섯 그루 나무’, 동네 이야기 열매를 맺다

 
누군가 ‘집’ 하면 가장 먼저 무엇이 떠오르느냐고 묻는다면? 혹은 집에 관한 가장 큰 고민은 무엇인지 물어 온다면? 아마 대다수의 사람들이 집이 지닌 경제적 가치를 생각하거나 ‘내 집 마련’ 정도를 떠올리지 않을까. 좀 더 구체적으로는 몇 평형의 특정 아파트를 떠올릴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정영한 아키텍츠의 정영한 소장은 ‘당신에게 집이란 어떤 의미인가’라고 질문한다. 지난해 한국 건축가협회상을 수상한 부산 초량동에 위치한 ‘다섯 그루 나무’ 게스트하우스는 이러한 정영한 소장의 집 그리고 건축에 대한 가치가 그대로 녹아있다.

 
 

건축가 정영한

<부산 초량동 ‘다섯 그루 나무’ 게스트하우스 풍경 / 노경 사진작가>

건축주와 함께 부지를 알아보던 중 땅값이 저렴한 초량동을 택했는데, 꼭 땅값 때문만은 아니었어요. 초량동은 한국전쟁 당시 피난민들이 몰려와 살았던 판자촌으로, 개발이 거의 이뤄지지 않아 당시 주거생활의 단면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죠. 그 동네가 담고 있는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매력적이었어요. 서민들이 옹기종기 모여 사는 분위기를 게스트하우스에 담아내고자 노력했고, 그 결과 분명 신축 건물인데도 이질적인 느낌 없이 동네의 일원이 되었죠.

 

작은 집에 담은 큰 이야기

 
다섯 채의 게스트하우스 건물 사이사이의 길도 동네 분위기와 자연스레 어우러졌다. 지역 주민들이 마을에 난 길로 착각하고 다니는 일이 생길 정도로 ‘다섯 그루 나무’ 게스트하우스는 마을의 일부가 되었다. 뿐만 아니라 초량동의 여느 집들처럼 담장도 없고 비탈길 많은 동네의 특성을 그대로 살린 다소 경사 높은 계단 덕분에 여행자들은 숙소에 머무는 동안 초량동이라는 지역을 직접 체험하는 덤까지 누리게 됐다.

 
건축가 정영한

<‘다섯 그루 나무’ 건물 사이의 길 / 노경 사진작가>

 
 

이 모든 것이 초량동의 이야기에 귀 기울인 결과였다. 정 소장의 건축 방식은 늘 이런 식이다. 집의 형태나 규모가 중요한 것이라 어떤 이야기를 담을 지를 가장 먼저 고민하는 것. 정 소장의 주도로 지난 2013년부터 이어져 온 <최소의 집> 장기 전시 프로젝트 집 혹은 건축이 담아내야 할 이야기에 대한 고민이 그 출발이었다.

 

최소의 집’이란 주제로 매년 건축가 3인의 전시를 기획해 왔어요. 단순히 작은 집을 짓자는 말이 아니에요. 그동안 우리들이 집이라고 하면 떠올렸던 ‘몇 평짜리 집, 방이 몇 개’하는 생각들에서 벗어나, 그 안에 실제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생각해보자는 거죠.

 

건축가 정영한

 
 

내가 완성한 ‘행복’이라는 이름의 집 짓기

 
정 소장은 각자 다른 사람들이 모두 같은 형태의 집에 사는 것에 대해 의문을 갖자고 했다.

 

이상한 일 아닌가요? 취향도 성향도 다른 이들이 다 똑같은 모양의 집에 사는데 그걸 당연하다고 여기며 살아가고 있잖아요. 모두가 획일화된 집에 산다는 건 분명 개개인에게 그다지 행복한 일은 아니에요. 많은 사람들이 내 삶이 반영된 집을 떠올리지 못해요. 저는 건축가로서 한 사람, 한 가족의 이야기가 담긴 집을 짓는 데 도움이 되고 싶어요. 그것이 제게 주어진 역할이죠.

 
그 가치의 실현을 위해 정 소장은 그동안 주거에 대한 많은 실험을 해왔다. 소개와 함께 화제를 모았던 ‘9×9 주택’이 대표적인 예. 70대 여류화가의 집인 ‘9×9 주택’을 지으면서 정 소장은 건축주에게 어쩌면 마지막이 될지도 모를 집에 어떤 이야기를 담아야 할까를 먼저 고민했다.

 

건축가 정영한

<가구를 빌트 인으로 설치한 ‘9×9 주택’ 내부 / 김재경 사진작가>

 

건축주의 나이와 라이프스타일을 감안해 자연을 최대한 집에 들여야 했어요. 그래서 집안에 유리 벽을 세워 그 공간에 나무를 심고 햇볕이 들어오도록 설계했죠. 또 대부분의 가구를 빌트 인으로 하고, 필요할 때만 사용하도록 했어요. 사실 보통은 가구가 방의 역할을 결정짓잖아요. 소파가 있으면 거실, 침대가 있으면 침실이 되는 식이죠. 이 집은 그런 고정관념을 없앴어요. 그렇게 하니 집주인이 집을 거주공간이자 작업실로 때에 따라 다양하게 사용할 수 있게 됐죠. 그래서 내가 원하는 집을 지으려면 가장 먼저 ‘나는 어떤 사람인가’하고 자문해봐야 합니다. 참 어려운 질문이죠? 그래도 답을 찾아야만 해요. 집이라는 건 한 사람의 기억의 출발이자 종착지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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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 보면 집이 삶에 미치는 영향력은 어마어마하다. 거주라는 가장 기본적인 삶의 요소이자 우리의 행복과도 직결돼 있으니까. 누구나 언젠가 갖게 될 혹은 갖고 싶은 자신만의 집을 꿈꾼다. 그 꿈을 실현하는 첫 걸음이 바로 ‘질문’이라는 사실을 정영한 소장 덕분에 발견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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