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론] 당신의 바람 냄새는 어떤가요?

푸른 초원에 말들이 줄을 지어 풀을 뜯고, 하늘에는 집채만한 구름이 놓인 곳. 밤이 되면 쏟아질 듯한 별들 아래 양 떼들의 종소리가 은은하게 울리는 곳. 몽골은 ‘참 느림’을 깨닫게 해준 여행지였습니다.

알람 대신 게르 천막 사이로 새어 들어오는 햇살에 잠에서 깨고, 천막 문을 열고 나가면 그림 같은 풍경을 마주하는 게 일상. 그밖의 시간은 구름이 드리운 그림자 아래에서 책을 읽고, 조랑말을 타며 유목민을 도와 땔감을 구하며 보냈죠. 이렇게 일주일을 지내다 보니 오늘이 며칠인지, 한국엔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궁금치도 않았습니다. 며칠 세수를 안 하고 피부가 더 부드러워지는 신기한 경험도 했죠.

바람 냄새를 품은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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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graph by ©Woori


유목민 가족을 도와 점심준비를 하던 어느 날, 아저씨가 은밀한 제안을 하듯 물었습니다. “혹시 태어난 지 일주일도 안 된 낙타 본 적 있어?” “전 그냥 낙타도 여기서 처음 봐요.” 유목민 아저씨는 제 손을 끌고 오토바이에 시동을 걸었습니다. 몽골에서는 오토바이로 30분 내외 거리는 옆집으로 삼는데, 그렇게 20분을 달려 가까운 ‘바로 옆집’에 도착했죠.

옆집 아저씨께 인사를 하는 둥 마는 둥 하고 헛간에서 걸음마 연습 중인 새끼 낙타를 데리고 나왔습니다. 제대로 걸음도 못 걷는 새끼낙타가 유목민 품에 안겨 애교를 피우는데 그 장면을 연신 카메라에 담았죠. 나도 만져보려 손을 가까이 가져가니, 낙타가 손을 피하며 뒷걸음쳤습니다. 다시 가까이 다가서면 또 저 멀리 거리를 두는 새끼 낙타. 옆에서 지켜보던 유목민 아저씨가 껄껄 웃었죠.

너를 왜 피하는지 난 안다고. 바람 냄새가 안 나. 동물들은 도시 냄새와 바람 냄새를 구분해. 자연에 묻혀 사는 나한테 나는 그 특유의 바람 냄새 때문에 동물들이 낯을 가리지 않지.

당신만의 바람 냄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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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graph by ©Woori


원주민 옷을 빌려 입어 겉모습은 그럴싸했지만, ‘바람 냄새’ 나지 않는 진짜 제 모습을 새끼 낙타는 눈치챈 걸까요? 도시생활을 그리워하고, 때로는 괜한 우월감을 느끼기도 했던 제 모습이 부끄러웠습니다. 이날 이후에야 바람 따라 유랑하고 자연에 기대 감사하며 사는 유목민의 삶이 바로 보였습니다. 모든 문명의 이기에서 벗어나, 태초 존재했던 자연인 모습 그대로 풍성한 그들의 행복도 보였습니다. 눈부신 햇살, 끝이 보이지 않는 초원, 그곳의 공기, 자연의 색감. 몽골을 떠올리며 호쾌한 자유인으로 살고 싶다고 소망할 때마다 저 자신에게 묻곤 합니다.

당신에겐 바람 냄새가 배어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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