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라보는 사진사, 나종민의 행복은 하드디스크다

바라보는 사진사, 나종민의 행복은 하드디스크다
사회가 많이 달라졌다고 하지만, 보이지 않는 장벽은 곳곳에 있습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장애를 둔 자식을 데리고 사진관에 간다는 건 꿈도 꾸기 힘든 일이었지요. 이런 인습을 바꾸어 나가며, 그늘에 숨은 사람들이 당당히 얼굴을 드러내고 마음껏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세상을 만드는 것. 나종민 사진사‘바라봄 사진관’의 문을 활짝 연 이유입니다.
 
 


 
 

삶의 기준을 바꾼 새로운 인생

 
 
저는 마흔다섯에 은퇴했어요. 당시 외국계 소프트웨어 회사의 국내 지사장 자리에 있었습니다. 많은 연봉을 받았고 젊은 날에 빠르게 승진했으니 괜찮은 자리에 있었다고 봐야죠. 그런데 정신없이 살던 어느 날, 그 ‘괜찮은 자리의 기준’이 뭔지 싶었습니다. 6개월 동안 심한 불면증을 겪으며 생각해보니 얻는 건 하나, ‘돈’ 이더군요. 그 외 모든 건 잃고 있었죠.
삶의 기준을 다시 세워야 했습니다. 회사를 나와 사진을 배우기 시작했어요. 제가 받은 특혜를 나눌 수 있는 일이 필요했지요. 장애인 캠프 단체에서 촬영 요청이 들어오면서, 하나둘 일손이 필요한 곳을 찾아다니기 시작했습니다.
 
사진봉사활동
 

‘혹시… 사진관에서 나오셨어요?’

 
 
뇌병변을 앓는 아이들 체육대회에 촬영을 간 적이 있어요. 한 어머님이 오셔서 조심스레 물으시더라고요. 사진관에서 오셨냐고. 그 어머님은 제가 사진관을 운영하면 아이들을 데리고 와서 촬영하고 싶으셨던 거에요. 비장애인들은 상상하기 힘들지만, 장애인들이 사진관에 가기란 정말 엄청 어렵거든요. 예전에는 바깥출입도 안할 정도로 사회와의 접점을 피하고 살았고,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아요. 그런데 눈부신 조명을 받고 자신의 모습을 남긴다니…. 큰 용기 내어 마음을 먹는다 해도 보통 건물 위층에 있는 사진관은 접근도 어렵고요. 하지만 그 어머님은 그래도 자식 사진을 남기고 싶으셨던 거에요. 그 말씀을 듣고 나서, 6개월 후에 제가 직접 사진관을 열었죠.
 
바라봄 사진관
 

0.5초의 웃음, 일하는 이유

 
 
그렇게 3년이 지났어요. 정말 많은 일이 있었죠. 얼마 전에는 장애인분들의 영정사진을 찍어드렸거든요. 그중에는 노숙하시던 분도 계셨는데요. 남루한 복장에 얼굴은 새카맣고, 바짝 긴장한 표정이셨어요. 그 얼굴만 봐도 삶의 고뇌와 궤적이 그냥 느껴질 정도였지요. 그런데 이 분이 훗날, 인화된 사진을 보고 0.5초 정도? 그러니까 아주 잠깐 ‘씨~익’ 웃으시더라고요. 자신의 모습을 사진으로 제대로 보는 건 처음이셨을 거에요. 웃음은 좋았다는 표시잖아요? ^^
 
영정사진 촬영
저희가 하는 일이 이래요. 다운증후군 아이들이 오면 노래 틀고 춤도 추며 분위기를 만들고, 2~3시간 촬영을 합니다. 오랜 시간 친구로 지냈다는 장애인들이 함께 찾아오기도 하는데, 그런 날은 정말 즐겁게 가족사진을 찍는 기분이 들어요.
 
 

이야기를 눌러 담은 하드디스크

 
 
이런 이야기들이 제 하드디스크에 가득 쌓였어요. 이 일을 시작한 2009년부터, 늘 따개비처럼 카메라를 등에 붙이고 살았거든요. 그동안 찍은 사진은 모두 보관하고 있어요. 용량만 해도 1.5테라 디스크 하나, 500기가 하나에요. 오래전에 촬영하신 분이 갑자기 다시 찾아오셔도, 날짜만 말씀하시면 모두 찾아드리죠. 예전보다 수입도 적고 회사 규모도 작지만, ‘무엇이 더 나은 삶이냐’ 물으시면 지금이 더 좋다고 자신 있게 답할 수 있습니다.
 
바라봄 사진관 나종민 대표
‘바라봄 사진관’이 지역 사회 곳곳에 2호점, 3호점 이렇게 늘어난다면, 우리 주변이 얼마나 따뜻해지겠어요? 지역 장애인 단체들의 니즈를 파악해 함께 활동하기를 원하는 사진관에 알려주는 것도, 앞으로 제가 할 역할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제가 하는 일은 사람들과의 ‘교감’이죠.

 


 
 
소외된 이들의 세상에 시선을 두고, 가장 아름다운 미소를 향해 셔터를 누르는 나종민 사진사. 그의 눈과 손은 쉴 틈이 없습니다. 어둠 속에서 빛은 더 환한 법이죠. 그래서 서로의 마음을 바라보는 사진관은 사계절 항상 따뜻한 ‘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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