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를 새기는 여자, 리금홍의 행복은 전각도장이다

리금홍 메인
우리 삶과 맞닿은 이야기들을 작품에 담는 설치미술가가 있습니다. 자장면, 가리봉동, 재개발…. 우리 주변의 소재에 시선을 맞추고, 보이는 것 이면에 담긴 이야기를 기록하는 리금홍 님. 그는 최근 몇 년간 할머니들을 찾아다니며 할머니들이 직접 써준 이름을 전각도장에 새기는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누구의 엄마, 누구의 할머니’로 불리는 것이 더 익숙한 그들의 이름을 리금홍 님은 왜 전각도장에 새기는 걸까요?
 
 


 
 

이름을 소재로 한 커뮤니티 아트

 
리금홍의 전각작업
리금홍은 제가 지은 이름이에요. 부모님이 지어주신 이름은 따로 있죠. 이름에는 그 사람의 이미지가 집약되어 있어요. 이름대로 된다는 말도 있잖아요. 그래서 우주 에너지의 시작 같은 느낌도 들어요. 이름에 관심을 두게 되었고, 국립현대미술관 창동스튜디오에 입주작가로 머무는 동안, 창동 지역의 할머니들을 만나 이름 이야기를 기록하는 커뮤니티 아트 작업을 했어요. 인터뷰를 위해 할머니들이 모여 계시는 노인회관에 자주 찾아갔죠. 친해지기 위해 수지침, 꽃놀이 등의 프로그램을 함께하며 이름에 관해 이야기를 나눴어요. 인터뷰하며 들었던 이야기를 할머니들이 직접 쓴 이름과 함께 <규방가사-각명기>라는 책으로 묶었죠.
 
각명기 - 리금홍
이름은 태어난 아이가 어떤 인물로 커 주었으면 하는 바람을 담은 것이라 할 수 있어요. 그걸 한자 체계를 이용해 변환해 표현한 것이 우리의 일반적 작명 방법이죠. 하지만 할머니들 이름은 이런 작명법에서 벗어난 것이 많아요. 셋째 딸이어서 ‘삼순이’, 예쁘다고 ‘입분이(이쁜이)’…… 요즘은 딸 이름을 그렇게 짓진 않잖아요. 할머니의 이름 이야기 뒤엔 스토리가 있어요. 좀 찡한 이야기가 많죠.
 
 

돌에 새긴 할머니들의 수줍은 이름

 
 
할머니들께 성함을 여쭈면 대답 대신 수줍게 웃으세요. 자기 이름을 입에 올리는 게 부끄럽다고 하시더라고요. 자기 이름보다 ‘누구 엄마, 누구 할머니’가 더 익숙한 분들이시니까요. 이름을 말하며 부끄러워하는 모습을 보고, 돌에 이름을 새겨드려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전각도장을 작업에 끌어들인 거죠. 할머니들에게 이름을 써달라 해서, 그 글씨 그대로 돌에 옮겨 새겨요. 삐뚤빼뚤한 글씨도, 거꾸로 써넣은 받침 ‘ㄹ’ 자도 그대로 기록하죠. ‘나 쓸 줄 모르는데….’하는 분들도 꽤 계세요. 못 쓰는 데 쓰라 한다고 화도 내시고요.
 
할머니의 손글씨 도장들
제가 만난 할머니 중엔 문맹인 분도 많았어요. 창동에 이어 백령도에서도 작업했는데, 시골로 갈수록 자기 이름만 겨우 쓸 줄 아는 분들이 많았죠. 글을 배우지 못한 이유를 듣고 마음이 아팠어요. ‘부모님이 가르쳐 놓으면 연애한다고 학교에 안 보냈다’고 하시더라고요. 자기주장 없이 순종적으로 살기를 강요당했던 긴 세월이 얼마나 답답하셨겠어요. 할머니들의 이름을 전각도장에 새기는 건, 그런 이야기를 기록하는 하나의 방식이에요.
 
 

호칭을 둘러싼 재미난 문화

 
할머니들의 전각도장으로 꾸민 전시
창동과 백령도에서 할머니들의 이름을 전각도장에 새기는 작업을 하면서 흥미로웠던 건, 지역마다 호칭에 대한 나름의 문화가 있다는 거였어요. 도시에 사시는 창동 할머니들은 ‘할머니’라는 호칭을 싫어하세요. 반면, 백령도 할머니들은 ‘어머니’라는 호칭을 불편해하셨죠. 그래서 ‘아! 지역 간에도, 커뮤니티마다 이름을 부르는 문화가 따로 있구나’ 싶었어요. 호칭을 둘러싼 특수한 문화는 요즘 젊은 엄마들 사이에서도 찾아볼 수 있어요. 제 아이 규진이가 올해 초등학교에 입학했거든요. 학부모들을 만나보면 엄마들끼리 서로를 부르는 규칙이 있어요. ‘금홍 씨’라고 이름을 부르거나 ‘규진이 엄마’라고 부를 꺼 같죠? 아니에요. 그들은 저를 ‘규진이 언니’라고 불러요. 젊은 엄마들이 모인 커뮤니티에도 호칭에 대한 특수한 문화가 존재하고 있는 거죠.
 
 

또 다른 여자들의 이름 이야기

 
전각작업을 하는 중
지난해엔 결혼이주자 여성들과도 함께 전각작업을 했어요. 할머니들과는 달리 서툴기는 하지만 직접 자기 이름을 새기며 이야기하는 방식으로 진행했죠. 어찌 보면 그들도 한글이 무척이나 서툰 사람들이잖아요. 서툰 글씨체로 쓴 이름을 돌에 새기는데, 친정엄마 이름, 자기 이름이 많더라고요. 그런데 혜림, 은서, 혜정, 민서…. 이런 이름을 새기는 이들도 있었어요. 물어보니 자기가 지은 한국 이름이래요. 드라마에 나오는 예쁜 이름들을 자기 이름 삼아, 그들은 자신들의 커뮤니티인 SNS 공간에서 그 이름으로 살아간다고 하네요. 신랑도 불러주지 않는 이름이지만, 그들의 커뮤니티에선 그 이름이 그들의 이미지를 대변하고 있죠. 뭔가 흥미롭지 않나요?

함께 생각해볼 만한 이야기들을 작품에 담는 과정이 즐거워요.

 


 
 
깊이 생각하지 않으면 딱히 이상해 보이지 않는 우리 삶의 모습들에, 리금홍 님은 따뜻하고 부드러운 방식으로 문제를 제기합니다. 인간이 행복한 삶을 위해 너무도 당연하게 소비하는 동물과 식물에 대해, 우리 사회의 관심에서 벗어나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해, 그리고 함께 살아갈 세상에 대해 작품을 통해 말을 겁니다. 우리가 관심을 두지 않았던 이야기를 들려주며, 같이 생각해 보자고, 정말 이래도 괜찮겠냐고 말이지요.
 
 

페이스북 트위터 카카오스토리 더보기
밴드 url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