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을 기록하는 사진작가, 이동춘의 행복은 ‘종가’다

행복피플 630-이동춘
속도와 변화가 미덕이 된 세상. 사람들은 ‘보다 더 편하고, 조금 더 부유하게’ 사는 것을 목표로, 옛것을 버리고 새로운 생활방식을 쫓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시대에도 과거의 가치와 전통을 지키는 이들이 존재합니다. 경북 안동의 종가 사람들이 그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는데요. 지난 8년 동안 그들의 옆에서 ‘안동 종가’의 생활상을 카메라로 담아 온 사진작가 이동춘 님. 그가 들려준 종가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봅니다.
 
 


 
 

우리 전통문화가 주는 따뜻함

 
 
‘우리의 전통적인 아름다움’에 관심을 두게 된 것은 <행복이 가득한 집> 사진기자 시절부터예요. 사진기자 생활을 10여 년 하면서 많은 분을 만났죠. 한국의 문화계 인사 대다수를 촬영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에요. 그러면서 우리 것에 대해 눈을 뜨기 시작했어요. 사진기자를 그만둔 후 ‘우리의 차’, ‘한옥’, ‘한식’ 등으로 제 작업을 이어갔어요. 한옥 작업을 하면서, 한옥의 따스함과 아름다움에 매료되어 버렸죠.
 
이동춘 작 도산서원
누군가 저에게 한옥을 제대로 찍으려면, 안동 종가에 가야 한다고 했어요. 한옥에서 생활하며 전통을 지키는 사람들을 카메라에 담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아무 연고도 없는 안동으로 바로 떠났죠.
 
 

1,000일 정성으로 ‘안동 종가’의 문을 열다

 
종가의 밤
아시겠지만, 종가 제례는 여성의 출입이 엄격히 금지되어 있어요. 종가 어른들은 ‘어디 여자가 종가 문턱을 넘느냐’며 처음엔 내다보지도 않았어요. 부엌에 들어가 나물도 다듬고, 어른이 비질을 하면 바로 빗자루를 들고 쫓아가 함께 마당을 쓸었죠. 할머니들과 함께 목욕탕에 가서 등을 밀어드리고, 장을 보러 가는 종부들을 보면 차에 태워드리곤 했어요. 정성이 통했는지, 어느 날부터 어른들이 저에게 ‘밥은 먹었느냐’라고 물어도 봐주시고, 말을 걸기 시작하셨죠. 제가 찍은 사진을 보여드리면서 ‘언젠가 사라질지 모르는 종가의 문화를 기록으로 남기고 싶다’고 한참 설득을 했습니다. 그렇게 3년이 지날 무렵, 드디어 촬영 승낙이 떨어졌어요. 지금은 제례가 있거나 특별한 때가 되면 ‘언제 오느냐?’고 전화를 주시고, 어르신께서 당신 방을 내주실 정도로 가족 같은 사이가 되었죠.
 
 

종가 문화에서 배운 ‘존경과 나눔’

 
 
종가는 제례뿐만 아니라 건축, 음식, 의복 등 한국 옛 문화의 전반적인 모습을 모두 만날 수 있는 ‘문화의 총체’라 할 수 있어요. 잊혀가는 우리의 아름다운 미덕과 지혜도 만날 수 있죠. ‘봉제사 접빈객(奉祭祀 接賓客; 제사를 받들고, 손님을 맞이하여 정성껏 대접한다)’이라는 말은 종가 문화의 핵심이자, 제가 사진을 통해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은 이야기에요. 종가 생활은 ‘굉장히 번거롭고 어렵고, 고리타분한 과거를 지키는 일’이라는 잘못된 인식이 대부분이거든요.
 
종가 사람들
제가 오랜 시간 종가를 접하면서 목격한 것은 불편함이나 고리타분함이 아니었어요. ‘제례’에는 가족과 이웃이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지혜가 담겨 있죠. 불필요한 형식을 지키는 것이 아니에요. 가족과 이웃이 함께 사랑하고 나누기 위함이 더 큰 목적이지요.
 
종가제례
온 마음을 다해 제례를 올리고, 끝나면 100명이 넘는 참가자들에 함께 식사를 나누는데요. 종부는 이 대접에 절대 소홀하지 않아요. 정성을 다하죠. 우리가 점점 잃어가는 ‘정성과 나눔의 미덕’이 거기에 오롯이 있어요. 사진 작업을 하면서 가치를 지키는 어르신들께 감사하다는 생각이 절로 났어요. 그분들을 위해서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종가의 진정한 모습을 ‘사진’에 담아 사람들에게 전하는 일이 아닌가 싶어요.
 
 

가치를 지키고, 전하는 일의 소중함

 
종가-가치를 지키는 사람들
8년이라는 시간을 안동에 투자한다는 것은 쉽지만은 않았어요. 상업사진으로 번 수입을 모두 종가 작업에 들이부어야 했고, 두 딸을 돌볼 틈이 나지 않아 아예 안동에 데리고 다니며 작업을 했죠. 하지만 저를 제일 힘들게 한 것은 선배나 후배들의 걱정이었어요. ‘안동 종가만 그렇게 오래 찍으면 먹고 살기 힘드니, 이제 팔릴만한 사진 작업을 하라’는 충고를 자주 들었는데요. 그때마다 참 막막한 기분이 들었어요.
 
물론 사람이 사는 데 있어서 먹고사는 것도 중요하겠죠. 하지만 안동에 내려가 종가 어른들을 뵈면, 그런 걱정과 염려 자체가 사치로 여겨지고 부끄러워져요. 남들이 뭐라든 상관하지 않고, 정성을 다해서 그 자리를 지키고 계시잖아요.
 
퇴계의 묘소를 참배하고 돌아가는 선비

가치를 지키고 전하는 일이 더 소중한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퇴계 묘소를 참배하고 내려오는 유성종 도산서원장의 뒷모습을 찍은 작품을 가장 아낀다는 이동춘 작가. 도포를 휘날리며 단아한 발걸음으로 묵묵히 앞을 향해 걷는 그 모습에서 선비의 삶이 어떤 것인지 느끼게 됩니다. 어렵게 안동 종가의 문을 열고, 한국의 정신적 아름다움을 기록해 온 그의 노력 덕분이었을까요? 요즘 안동에서는 ‘이동춘 후배’라고 하면, 촬영 승낙이 떨어진다고 합니다. 후배들이 나처럼 고생을 안 해서 다행이다 싶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좀 억울하기도 하다는 이동춘 작가의 넉넉한 웃음에 행복감이 묻어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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