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인문학] 생일 미역국의 의미를 쫓아서

01
해마다 돌아오는 생일의 식탁에는 빠지지 않고 올라오는 음식이 있습니다. 바로 ‘미역국’인데요. 쇠고기 미역국, 들깨 미역국, 홍합 미역국 등 지역 혹은 집집마다 특색을 담아 정성껏 끓인 미역국을 생일상에 내어 놓습니다. 그런데 생일에 미역국을 먹는 문화는 오직 한국에만 있다고 하는데요. 미역국은 어떤 사연으로 생일상에 오르게 되었을까요?
 
 

삼신할미상으로 연결된 생명의 끈

 
 
미역은 한 인간의 탄생, 즉 아이의 출산부터 우리 곁에 있었습니다. 선조들은 태기가 있을 때면 장미역부터 마련했습니다. 꺾지 않고 말린 미역을 장미역이라 하는데, 이 장미역은 산모가 아이를 잘 낳고 태어난 아이도 오래 살 수 있게 도와준다는 의미가 있었습니다. 우리가 먹는 생일상의 미역국은 삼신할미상과 관련이 있습니다. 산모의 방 한쪽에 상을 놓고 그 위에 장미역과 쌀을 올려둔 것이 삼신할미상입니다.
 
02

<갓 채취한 미역> 사진 출처: www.기장사람들.kr

 
 
삼신할미는 아이의 출산과 성장을 관장하는 신으로, 아이가 태어나면 삼신할미상의 미역과 쌀로 국을 끓이고 밥을 해 다시 상에 올리고 산모도 이 미역국과 밥을 먹었습니다. 산모는 출산 날부터 세이레(21일)까지 미역국을 먹었습니다. 출산 후 삼신할미상을 곧 거두지만 아이가 일곱 살이 될 때까지는 생일에 삼신할미상을 차렸습니다. 아이가 삼신할미상의 미역국을 통해 건강과 복을 받기를 기원하는 풍습이 담겨 있는 것일까요?
 
미역이 탄생과 어떤 관련이 있는지 더 알고 싶었습니다. 어느 해 이른 봄, 저는 미역을 거둘 때를 맞춰 미역 산지에 취재를 갔습니다. 요즘은 거의 미역을 양식하기 때문에 작업이 쉽다고 합니다. 양식 이전에는 미역을 어떻게 생산했는지 궁금했는데, 이곳에서 ‘미역바위 씻기’를 알게 되었습니다. 이를 통해 “아, 그래서 생일에 미역을 먹는구나” 하고 무릎을 쳤습니다.
 
 

정성과 기다림 끝에 탄생하는 미역

 
 
미역은 1년생입니다. 봄에 미역 줄기 아래에 미역귀라는 주름진 덩이가 생기는데, 여기에서 유주자(遊走子: 무성 세포로 정자와 난자가 되기 전의 상태)가 방출되고 여름에 미역은 녹아버립니다.

03

<미역귀> 사진 출처: www.기장사람들.kr

 
유주자는 방출 후 배우체가 돼 여름을 나고 가을이면 암수로 나뉘어져 수정을 하는데, 이 수정란이 바위에 붙어 미역으로 자랍니다. 10월 말에서 11월 초에 자연산 미역의 수정란이 바위에 붙습니다.
 
이때 미역이 붙을 바위를 청소하는 미역바위 씻기를 합니다. 바닷가에서는 이 미역바위 씻기가 보통 일이 아닙니다. 이즈음 바다 날씨는 춥고 파도가 거칠어 미끄러운 바위에 오르는 것부터 힘듭니다. 또 미역바위를 씻은 사람이 그 바위에서 나는 미역의 주인이 되기 때문에 미역바위 쟁탈전도 치열합니다. 혹독한 겨울을 넘겨 이른 봄까지 이렇게 깨끗하게 닦은 바위 위에 미역을 올려 키우면 아무것도 없는 바위에서 미역이 탄생합니다. 선조들의 눈에 정성과 기다림 끝에 태어나는 과정이 출산과 다르지 않게 보였을 것입니다.

 
04

<채취 후 건조 중인 미역> 사진 출처: www.기장사람들.kr

 
 
삼신할미상과 산모의 밥상에 미역국을 올리는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삼신할미가 일곱 살까지 아이의 일에 관여한다는 민간 신앙 때문에 일곱 살까지 삼신할미상을 받아 미역국을 먹었습니다. 조선 시대 기록물을 살펴보면 일곱 살 이후부터 어른이 될 때까지는 생일상이 없었습니다.
 
삼신할미의 보살핌이 끝났으니 상을 차릴 일이 없고 상투를 틀지 않았으니 어른 대접을 받지 못하는 시기였기 때문입니다. 대신 어른이 된 후에는 생일잔치를 열어 이웃과 친구들과 함께 생일을 보냈습니다. 사람은 어미가 새끼를 거두어 먹이는 포유동물 중 하나입니다. 문명이 생기기 전인 원시 시대에는 일곱 살이 되면 스스로 채집활동이 가능하다고 인식했기 때문에 이전까지만 어미가 품고 먹였습니다.
 
그리고 이 일곱 살의 흔적은 심리적 이유기로 남아 있습니다. 본능적으로 아이가 스스로 독립하려고 엄마의 말을 잘 듣지 않는 시기인데, 이때 엄마도 아이의 독립을 돕기 위해 무의식적으로 아이를 밀어냅니다. 제가 어릴 때 받았던 생일 독상이 그토록 쓸쓸하게 느껴졌던 것은 어쩌면 어머니의 이런 마음이 전해졌기 때문일지 모릅니다.
 

글 / 황교익
 
‘맛’을 글로 전하는 맛 칼럼니스트. 농민신문사와 (사)향토지적재산본부에서 향토음식과 지역 특산물을 발굴하고 취재하는 일을 했다. 현재 향토음식과 식재료 전문가로 활동하고 있으며 블로그를 통해 많은 사람들과 음식 이야기로 소통한다. 오랜 시간 맛본 음식과 오랜 시간 나눈 이야기로 《맛 따라 갈까보다》 《미각의 제국》 등의 책을 썼다.

 
* 윗 글은 《사보 SK》 2015년 04월호에서 발췌하였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SK그룹 홈페이지 《사보 SK》를 통해 보실 수 있습니다.
 

<미역활용 tip – 소화가 잘 되는 매콤달콤 ‘미역 떡볶이’>

06_1
 

한국인이 좋아하는 대표 간식, 떡볶이. 떡볶이와 미역은 흔히 볼 수 있는 조합이 아닌데요. 그런데 떡볶이에 미역을 곁들이면 소화도 더 잘되고, 은은한 바다 향을 느낄 수 있어 일석이조라고 합니다.

가끔, 색다른 떡볶이가 먹고 싶을 때, 미역을 같이 넣어 조리해 보세요!
 

<사진 출처 : 네이버 블로그 ‘하이, 서언니에요’>

 

페이스북 트위터 카카오스토리 더보기
밴드 url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