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를 찾아 떠난 여행자. 티 큐레이터, 노시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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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만들어진 찻잎을 차 병에 넣고 적당한 온도의 온수를 부어 차를 우린다. 우러난 차를 찻잔에 정성스레 따르는 손길에서 차를 다루는 마음이 느껴진다. 입안 가득 퍼지는 차의 향기에 주변의 공기마저 삽시간에 환기되는 기분이다. “백차예요. 살구색을 띠어 빛깔이 곱죠. 마음 안정의 효과도 있고 해열작용도 뛰어나서 약으로도 쓰이는 차예요.” 조곤조곤 차에 관해 설명하는 노시은의 모습에서 왜 그녀가 티 큐레이터 내지는 티 마스터라 불리는지 알 수 있었다.

 
 

내겐 너무 소중한 차

 
 

차를 알게 되어 고맙고 차를 알아가는 과정이 너무나도 즐겁다는 여자, 노시은. 왜 그렇게 차가 좋은지 묻자 얼굴에 미소가 번지며 차는 자기 삶의 일부라고 말한다. 한국차 전문가인 고모의 영향으로 어린 시절부터 고모를 따라다니며 차를 마셨단다. 초등학교 시절 그녀의 첫 여행지였던 일본에서 마셔본 차에 대해서도 ‘상당히 깊고 짙은 여운’이라고 그 맛을 기억할 정도다. 그녀는 여행을 참 많이 다니는데, 그 이유는 어쩌면 전 세계의 차를 음미하고 싶기 때문일지도 모른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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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강생에게 티 강의 중인 노시은 >

여행하면서 많은 차를 만나왔죠. 다니면서 새롭게 알게 되는 차를 만날 때 너무 기뻐요. 2010년에 7개월간 스페인, 북아프리카, 중동, 스위스 그리고 그루지야를 여행했을 때였어요. 당시 힘든 일이 있어서 저 자신에 대한 회의가 들 때였는데, 왠지 가장 이국적인 곳으로 가고 싶었어요. 그곳에서 만나는 차들은 어떨까 하는 호기심에서였죠. 너무 신기한 것이 제가 커피를 못 마시는데 마치 그것을 안다는 듯이 그곳에서 만난 모든 사람들은 제게 차를 내줬어요. 특히 모로코에서는 설탕을 듬뿍 넣은 민트티를 내줘서 지금까지 제가 생각하는 민트티와 달라 놀랐는데 나중에 중동의 다른 나라들을 다닐 땐 설탕 없이 차를 마시면 서운했을 정도였어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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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시은이 여행가서 찍은 사진들 >

 

그녀는 말도 통하지 않는 그 나라들에서 사람의 정을 알고 또 새로운 차를 만났다. 여행을 떠나기 전, 그녀는 자신의 처지가 사막에 있는 것 같다는 막막함을 느꼈다. 하지만 이제 그녀에게서 그러한 ‘사막 같다’는 표현은 쓸 수 없을 듯 하다.

사막처럼 막막한 마음이었는데 실제로 사막을 가보면 내가 느끼는 마음과 같을까 생각했어요. 하지만 사하라 사막 마을에서 만난 사람들은 외지인인 제게도 참 친절했어요. 1주일 남짓 되는 동안 그곳에 머무르면서 그들의 전통 결혼식에 초대도 받아보고 하니 사막에 대한 막막함이 사라지더라고요. ‘아, 사막에서도 사람들이 이렇게 살고 있고 그들에게 사막은 현실이구나.’ 그때 그분들이 제게 차를 타주셨어요. 사막의 식물과 허브, 장미 같은 것이 다양하게 블렌딩된 차였는데 참 예쁘면서도 눈이 번쩍 뜨이는 신선한 맛이었어요. 황무지 같은 사막에서 이런 맛을 느낄 수 있다는 걸 감사하게 생각했었죠.

차는 여행의 파트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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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두 권의 책을 발간했다. 한 권은 젊은 날 청춘의 기록인 < 내 배낭 속의 영국 남자 >. 그리고 얼마 전 출간된 차와 사람에 관한 사색을 담은 < 언제라도 티타임 >이다. 차에 대해 책을 낼 정도로 할 말이 많은 그녀. 뜨거운 물과 차 그리고 마실 그릇만 있으면 언제든 함께할 수 있는 동반자인 차는 그녀의 여행과 항상 함께 해왔다. 그녀는 여행 중에 차를 마시면서 생각을 정리하며 글을 쓴다. 그리고 자신 인생의 기록으로 사진을 찍는다. 그렇게 묶인 결과물 < 언제라도 티타임 >에 대해 그녀 자신에게 어떤 느낌이냐고 묻자 겸연쩍게 웃으면서 세 번째 낼 책의 과정이라고 생각한다며 수줍어한다. 그리고 동시에 자신의 차에 대한 사랑 고백이라고 말한다.

제가 차를 마실 때 사람들이 그래요. 어쩜 그렇게 행복한 얼굴을 하냐고요(웃음). 차를 마시면 여행 생각이 나요. 여행 당시의 기억이라든지, 아니면 못 가본 나라의 차를 마시고 있으면 그곳으로 떠나고 싶고요. 전 차로 인해 괴롭고 힘들었던 기억이 없어요. 티 큐레이터의 자격증을 딸 때도 많은 것을 준비하고 공부해야 했지만, 그 과정이 너무 즐거웠어요. 차는 제게 행복이고 즐거움이자 위안이었던 거죠.

차 권하는 여자, 노시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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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엔 큐레이터가 있다. 그들은 어떤 작가의 무슨 작품을 전시할 것인가를 결정하고 작품을 수급해와서 어떠한 동선으로 배치해 감상자에게 선보일까를 고심한다. 그녀는 티 큐레이터도 비슷한 맥락이라고 했다. 어떤 차를 낼 것이며 분위기를 신경 쓰기 위해 어떤 그림을 걸고 음악을 틀지, 무슨 다구로 차를 우릴 것이며 어떤 디저트를 내는지 등이 티 큐레이터가 하는 일이다. 이러한 일을 하기 위해선 제일 중요한 것은 차를 그만큼 많이 알아야 하는 것이라고 그녀는 말한다. 그녀는 티 큐레이터의 전문가로서 각자 다른 나라의 차 문화를 접목하고자 하는 소망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그에 관한 책을 내보고 싶은 욕심도 있다.

 

지금 전 세계적으로 차 시장이 엄청나게 커지고 있어요. 우리나라만 봐도 마트 코너에 차 종류가 이전보다 상당히 늘었죠. 외국드라마에서도 차 마시는 장면이 제법 나오고 있고요. 이런 상황에서 티 큐레이터는 블루오션이라고 할 수 있죠. 차에 대해서 더 열심히 공부하면 차와 관련된 소설을 쓸 수도 있고 제가 추구하는 티 큐레이팅을 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해요. 이런 일을 하는 것은 궁극적으로 제가 차에 관해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아서일 수도 있고, 동시에 전 그냥 차가 좋아서 더 많은 사람에게 맛보게끔 해보고 싶다는 생각에서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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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는 그 자체로 좋고 어떤 의미도 담지 않아도 여러 사람과 함께 마실 수 있어서 기쁘다는 노시은. 차라는 것은 그녀에게 정말 행복을 주는 매개체로 보인다. 좋은 것은 나누면 기쁨이 배가 된다고 했던가. 차를 마시며 행복한 그 감정을 다른 사람도 같이 느낀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 것 같다는 그녀. 차 마시는 여자 노시은을 만나면 그녀는 필히 이렇게 말할 것이다.

차 한잔 하시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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