옻칠작가 신정은, 그녀에게 ‘희망’이 갖는 의미

현재가 가장 행복해요. 제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고, 사랑하는 가족들이 너무나 건강하게 잘 있고, 일과 가정을 병행할 수 있는 상황이 되어서 행복해요. 저는 욕심이 많은 사람이에요. 이 모든 일을 감당하려면, 시간에 맞춰서 열심히 뛰어다녀야 하고, 밤도 새야 하지만, 그래도 욕심을 부릴 수 있는 상황인 게 정말 감사하죠.


예술의 전당 한가람 디자인미술관의 한 전시실에서 만난 신정은 씨가 얘기합니다.

행복이 뭘까. 행복하다 한들 내가 느낄 수나 있을까? 그런 생각을 했었어요. 사실 못 느끼면 그만이거든요. 지난 날이 힘들지 않았으면, ‘남들도 다 그렇게 사는 거야.’하고 넘어갔을 지도 몰라요. 어느 순간 왈칵 솟구치게 행복을 느끼다 보면, ‘아, 내가 이 순간을 느낄 만큼 열심히 살았구나.’하죠.

그렇기에 신정은 씨는 ‘헹복이란 물이 스미듯 젖어 들어, 어느 순간 느끼게 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신정은 씨는 옻칠작가입니다. 기본적으로 다양한 기물이나 오브제, 인테리어 소품 등을 만들고, 나아가 가톨릭 미사에 쓰이는 성물에 옻칠을 접목시킴으로써, 예술적인 아름다움과 실용성을 추구해 왔는데요, 이날 전시관에도 푸른색이 감도는 검은 빛의 나무 성작, 신성한 성령을 뜻하는 ‚Spritus II’가 전시되어 있었습니다.

우리나라의 가톨릭 성물은 역사가 짧아요. 길어야 50년 정도죠. 자체 생산하는 양은 아직 많지 않고, 거의 외국에서 들여오는데, 보통 미사드릴 때 쓰는 성작은 와인의 산 성분에 금도금이 녹는다고 하더라고요. 거의 반영구적으로 쓰이니까, 조금씩 깎여나가면서 중금속이 나오죠.
 
그래서 유럽에서 상대적으로 많이 쓰이는 나무 성작을 떠올렸어요. 나무 성작 위에 옻칠을 하면, 습기에도 강하고, 불에도 잘 안 타면서, 상당히 전통적인 느낌도 나니까, 일석이조라고 생각했죠.

전시를 하고, 강의를 맡으며, 누구보다 바쁘고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는 그녀에게도 그다지 행복하지 않았던 때가 있었습니다.

뚜렷한 성과 없이, 누가 알아주지도 않는 작업을 힘들게 이어나가던 긴 시간, 굉장히 답답했어요. ‘나는 안되나 보다’ 그랬죠. 하지만 아무 것도 안 풀리고, 뭘 해도 결과가 나오지 않던 그때, 그때도 묵묵히 할 일을 찾아 다니면서 했어요. 하면서도 이렇게 빛을 보리라는 생각은 못했어요. 그저 희망이라도 잡으려고 그랬죠.


행복에 도달하는 터널을 지나는 동안, 그녀가 힘을 낼 수 있도록 도와주었던 요인이 두 가지 있었습니다.
 
그 중 첫째가 ‘미래지향적인 사람’이었습니다. 그녀는 자신이 꽤 비관적이고, 현실에 안주하는 성격이었지만, 그다지 행복하지 않던 그때도 미래지향적인 사람을 좋아했다고 얘기합니다.

주변을 살펴보면, 목표를 가지고 되든 안되든 질주하는 사람들이 꼭 하나씩은 있거든요. 그런 사람들은 일을 해 나가는 모습이 정말 매력적이에요. ‘와, 쟤는 뭐가 되도 되겠다’하는 사람들. 저도 그런 사람들이 되고 싶었어요.

둘째는 ‚인정해 주는 사람‘이었습니다. 자신감이 하나도 없는 그녀에게 딱히 큰 칭찬이 아니더라도 ‘재능이 있다’고 인정해주는 남편의 말, 작품에 우스개 소리로 ‘쓰는 색깔이 지저분한데, 예쁘다?’하면서도 ‘이 작품은 이래서 좋아, 저 작품은 저래서 멋져.’하고 칭찬해주는 친구의 말이 정말 큰 힘이 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열심히 노력했다’는 점이었습니다. 목표로서의 행복을 위해 큰 일을 하려 했다기 보다는, 어려움을 만난 그때그때 현명하게 대처하려는 노력이었다고 합니다.
 

많은 공부도 필요했습니다. 옻칠작업에 있어서 실용성과 디자인을 고민하고, 자신의 영감을 어떻게 입힐지 두고두고 연구했던 것처럼, 학교에서 가르쳐주지 않는 사람들과의 관계, 남편과 아이들과의 관계를 위해서도 마찬가지로 책을 읽고, 자료를 찾아보는 등 적극적으로 공부했습니다.

좀 희한하지만, 결과를 바라고 노력한 건 아니었어요. 그런데 나중에 보니, 그게 정말 다 도움이 되더라고요.

어느 순간에 작은 일 한두 개가 정말 거짓말처럼 풀렸습니다. 신호탄이었습니다. 그녀는 ‘이렇게 되려고 힘들었나 보다’라고 느끼기 시작한 그 시점부터 모든 상황이 긍정적으로 바뀌었다고 말했습니다.
 
현재가 가장 행복하다는 그녀는, 여전히 노력하는 사람입니다. 특히 한창 손이 갈 나이의 아이 둘을 키우면서 작업을 하기는 여전히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녀는 “어느 배우가 ‘나는 화장실을 대궐같이 꾸며놨다. 왜냐하면 유일하게 조용히 앉아있을 수 있는 곳이 화장실뿐이기 때문이다’라고 했던 말에 깊이 공감해요.”라며 웃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육아와 일, 둘 중 하나를 소홀히 하고 싶지는 않다고 합니다.

욕심이 많잖아요. 맡길 수 있어도, 맡기고 싶지 않아요. 내 아이도 내가 잘 기르고 싶고, 내 작품도 내가 잘 만들고 싶어요. 그래서 더 힘들긴 했는데, 나중에 그만큼 기쁨도 크죠. 기쁨 두 배. 하하.


일상에 쫓기며 살다 보니, 거기에서 조금만 탈피해도 오히려 반짝반짝 떠오르는 영감이 있다고 얘기하는 그녀를 보며, 말로 하지 않아도 수없이 들인 노력이 행복하게 된 원인이었음을, 더불어 시간이 지날수록 노력한 만큼의 더 많은 행복이 찾아오리라는 사실을, 행복지기는 깨닫습니다.
 
역시 노력 없이 제 발로 찾아오는 행복이란 세상에 없겠죠?
 
그녀는 앞으로 성물은 물론이고, 옻칠을 이용한 상품 개발, 특히 인테리어에 관심을 기울이고 싶다고 합니다.
 
사실 큰 돈이 되지 않는 작업임에도 불구하고, 믿어주는 가족과 여러분들 덕분에 해낼 수 있었다고 덧붙이는 겸손함에서, 오랜 시일이 걸리지 않아 또 다른 노력의 결과를 보게 되겠다는 예감이 듭니다.
 
노력하는 모습이 아름다운 신정은 씨, 계속해서 행복하시길 기원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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