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숭을 그리는 한국화 작가, 김현정

 
‘발칙’, ‘당돌’, ‘내숭’은 김현정 작가를 대변하는 대표적인 수식어입니다. 한국화는 고상하고 기품 있어야 한다는 사람들의 편견을 시원하게 깨버린 그녀는 참신한 발상과 표현기법으로 주목 받고 있죠. ‘내숭’이라는 키워드로 한국화를 유쾌하게 그려내고 있는 ‘화가계의 아이돌’ 김현정 작가를 만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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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정 작가는 현재 가장 주목 받는 한국화단의 유망주입니다. 2013년 ‘내숭이야기’라는 첫 개인전에서는 출품작 13점이 모두 ‘완판’됐고, 2016년 ‘내숭놀이공원’ 개인전은 총관객수 6만7402명을 기록하며 국내 작가 개인전 최다 관람객을 기록했습니다. 뉴욕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에서 초대 개인전을 열고,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최연소 작가로 초청 전시를 하는 등 국내외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죠.
 
 
 
 

한복입은 내숭녀는 작가의 자화상

 
김현정 작가의 그림은 ‘내숭’을 이야기합니다. 고상한 한복을 차려 입었지만, 고상하지 않은 일상을 포착해 그리죠. 한복 치마를 무릎까지 걷어 올린 채 라면 박스 위에 짜장면을 올려놓고 먹는다던가, 변기 위에 앉아 스마트폰에 집중하고 있는 모습 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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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 <내숭 : 완벽한 밥상>, 2013
한지 위에 수묵담채, 콜라쥬
 
(오른쪽) <내숭 : 운치있다.>, 2012
한지 위에 수묵담채, 콜라쥬

 
한 번쯤 경험했을 법한 일상적인 상황이지만 한복 입은 내숭녀를 통해 그 모습을 마주하게 되면 관객은 웃음을 터뜨립니다.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나는데도 좋아하는 남자에게 잘 보이려 배고프지 않다고 말하는 경우가 있죠? 이런 게 바로 귀여운 내숭이잖아요. 작품 속에는 다른 사람에게 잘 보이기 위해 아닌 척 하는 내숭녀의 모습이 담겨있어요. 그것은 고백적인 제 모습이기도 해요.”
 
김현정 작가가 내숭 이야기를 기획하게 된 것은 대학교 2학년 때입니다. 당시 우울증을 앓고 있던 그녀는 사람 만나는 것에 어려움을 느꼈습니다. 특히나 앞과 뒤가 다른 사람들의 이중성이 그녀를 가장 힘들게 했죠. 김현정 작가는 이런 사람들의 모습을 ‘내숭’이라는 키워드에 담아 표현하기로 했습니다.
 
처음에는 미워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떠올리며 내숭 섞인 모습을 연출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그림 속에 있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했죠. 김현정 작가는 그들을 미워했던 이유가 결국 자신과 닮아서라는 것을 깨달았고, 그때부터 자신의 고백적 자화상을 그리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자화상답게 작품의 모델은 김현정 작가 자신입니다. 작품을 구상한 뒤 직접 모델이 돼 몸의 실루엣이 드러나는 얇은 옷을 입고 촬영을 진행하죠. 사진을 누드 형식으로 화폭에 그리면 밑그림이 완성입니다. 여기에 한복 상의는 직접 염색한 한지를 겹겹이 붙여 연출하고, 하의는 먹으로 옅게 표현해내죠. 서양의 콜라주와 동양의 수묵담채 기법이 만난 새로운 시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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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숭 : 소주 한 점 하고 싶은 밤>, 2016
한지 위에 수묵담채, 콜라쥬

 
“말리기와 덧바르기를 30회 이상 반복하다 보니 하나의 작품을 완성하는 과정은 2개월에서 6개월 정도 걸려요. 캔버스에 점 하나만 찍어도 작품이 되는데, 너무 미련하게 그리는 것 아니냐는 말도 들었죠.(웃음) 하지만 좋은 작품을 위해서는 오래 공들이고 살펴야 한다고 생각해요.”
 
 
 
 

회사원처럼 ‘열일’하는 작가, 몰입은 즐거워

 
김현정 작가는 관객을 만나거나, 행사에 나설 때면 늘 곱게 한복을 차려 입습니다. 한복이 그녀의 ‘트레이드 마크’가 됐기 때문인데요. 처음에는 명절도 아닌데 한복을 입고 밖에 나선다는 것이 부끄럽기도 했지만, ‘한복 입은 내숭녀’를 그리는 작가의 사명감으로 부끄러움을 떨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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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청바지나 원피스보다 한복이 더 편하고 자연스럽다는 김현정 작가.

 
작품에 대한 애착으로 패션 스타일까지 바꾼 그녀는 그림 작업도 ‘회사원처럼’ 성실하게 하는 것으로 소문나 있습니다. 주 7일, 아침 9시 출근해 야근까지 하는 살벌한 근무 환경이죠. 그녀가 이렇게 그림을 그리게 된 것은 대학 시절 들었던 경영학 수업의 영향이 크다고 하네요.
 
“미술 작품은 비싼데 화가는 가난하다는 것이 아이러니했죠. 미술 시장에 대해 이해하려고 경영학을 복수 전공했어요. 첫 수업을 듣던 날 10분 일찍 갔는데, 맨 뒷줄 구석 자리밖에 없더라고요. 미대는 3분 지각해도 일찍 온 편에 속했는데, 경영대는 달랐죠. 그렇게 열심히 공부하는 학생들을 보면서 ‘나는 이렇게 치열하게 그림을 그리고 있나’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배고픈 예술가가 되고 싶지 않았던 그녀는 남들보다 더 부지런히 그리고 열심히 작업을 하기로 결심했습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아침에는 작업실로 출근해 매일매일 그림을 그리죠.
 
“그림을 그리는 순간은 잡념이 없어져요. 제가 좋아하는 무언가에 온 신경을 쏟아 부을 수 있다는 것은 굉장히 신나는 일이 잖아요? ‘관객의 몰입’을 볼 때도 그 희열감은 여전해요. 제가 그린 작품을 진심으로 즐기면서 ‘재미있다’, ‘공감 간다’고 말하면 뿌듯하고 기쁘죠.”
 
 
 
 

관객과 함께 그림 그리는 ‘소셜 드로잉’

 
‘소셜 드로잉’이라는 개념을 작품 활동에 접목한 것도 관객이 더 즐겁게 그림을 즐길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죠. 김현정 작가는 소셜 드로잉에 대해 ‘대중과 작가가 함께 의견을 나누고 작품을 만들어가는 과정’이라 설명합니다. 작가 한 명의 일방적인 생각을 표현하는 것에서 벗어나 SNS 활동을 통해 관객들의 의견이나 경험, 관점 등이 더해진 그림을 완성하는 것이죠.
 
“작품을 하는 원동력은 관객에게서 나와요. 앞으로 더 많은 분들이 행복해하고 즐거워할 수 있는 작품, 전시를 만들어가고 싶어요. 올해는 ‘21세기 풍속도’ 작업을 시작할 계획이에요. 곧 새로운 그림으로 관객을 만나러 가겠습니다.”
 
자신이 그림에서 치유 받았듯, 관객들도 자신의 작품에서 즐거움을 얻길 바란다는 김현정 작가. 그녀의 재기발랄하고 발칙한 상상력이 많은 이들의 일상에 유쾌함을 전할 수 있길 기대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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