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려진 공간을 재발견하다, 건축가 이의중

 
인천의 옛 얼음창고가 주민들이 반기는 카페로 변신했습니다. 방치됐던 공간을 핫플레이스로 변신시킨건 건축재생공방의 대표이자 카페 ‘아카이브 빙고(氷庫)’의 주인인 이의중 씨인데요. 공간에 이야기를 쌓아가는 지속가능한 건축을 하고 싶다는 이의중 대표를 만나 재생건축의 의미에 대해 들어봤습니다.
 

 
 
 
 

1950년대 얼음창고의 변신

 
1950년대까지 얼음창고로 쓰였던 인천의 빙고(氷庫)가 카페로 변신했습니다. 당시에는 마포나루터에서 왕복 4~6시간이 걸려 가져 온 귀한 얼음을 보관하던 장소였는데요. 그 후 주류창고, 인천시교육청의 서고로 사용되다가 근 10년 전까지는 아무도 사용하지 않고 방치되어 있었죠. 후미지고 좁은 골목에 위치한 창고는 우연히 재생건축가 이의중 대표의 눈에 띄었는데요.
 
“국토연구원에서 도시재생사업의 연구자로 사업 선정부터 운영, 모니터링까지 실행하는 일을 했습니다. 전국을 돌면서 자연스럽게 지방의 동네들을 보게 되었죠. 부산, 군산, 목포, 대구 등을 염두에 두었는데, 최종적으로 인천을 선택했던 이유는 도시의 시간이 천천히 흘러간다는 점 때문이었어요. 개발이 본격화 되지 않아 원래 있던 주민들도 많이 있었거든요.”
 
이의중 대표는 근현대사를 거치며 쇠락한 도시들이 매력적으로 다가왔다고 하는데요. 도시가 번영했다 쇠퇴하는 과정 속에서 버려진 공간이 많은데, 이런 공간을 재생하면 다시 도시가 주목받을 수 있는 계기가 되기 때문이죠.
 

낡고 오래돼 버려져 있던 얼음창고(좌측 상단)가 카페로 재탄생(우측 상단)해 현재는 각종 모임, 전시, 공연 등이 열리고 있다
(건축물 이미지 출처: 이의중 대표 제공)

 
3년전 얼음창고 프로젝트를 시작할 때만해도 이의중 대표는 인천에 아는 사람 하나 없는 외지인이었습니다. 작업을 하며 자재 수급의 어려움을 겪고, 재생건축을 할 수 있는 인력이 부족하기도 했지만 그래도 힘을 낼 수 있었던 건 지역 주민들의 반응 덕분이었죠.
 
“옛 모습에 향수를 가진 어르신들이 관심을 많이 가져 주셨어요. 얼음창고가 있던 신포동은 인천의 명동이라 불리는 번화가였거든요. 바로 앞 항구에 큰 페리들이 정박했고 외국 선원과 물류 업자들이 드나들었죠. 건축 재생을 하면서 30년 이상 된 재즈 클럽을 운영 중인 사장님, 상가 주민들과 안면을 텄고 이제는 지역 부흥을 위한 활동을 함께 하고 있습니다.”
 
 
 
 

공간이 지닌 가치를 깨달았던 경험들

 
이의중 대표가 공간에 대한 특별한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가 있는데요. 서울 잠실지역 토박이었던 이의중 대표는 건축학과 4학년 재학중에 자신이 살던 아파트 단지가 재개발로 없어지는 일을 겪었습니다.
 
“상실감이 굉장했어요. 어릴 때는 아파트 단지 내에 학교를 다녔고, 상가 건물 지하에서 떡볶이를 먹으며 자랐죠. 가족, 친구들과 함께 쌓은 모든 추억이 사라지는 느낌이 들더라고요. 그때 공간이 지닌 가치가 크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이의중 대표는 졸업 후 한남동의 한 인테리어 업체에 취직을 했는데요. 트렌드에 맞춰 소비되는 일에 아쉬움을 느끼고 일본 유학길에 올랐습니다. 이후 고베에 있는 대학원에서 건축사를 공부했고, 창고가 많은 곳으로 유명한 구라시키(倉敷) 지역의 건축 설계소에서 일을 하게 됐죠.
 

오래된 집들을 지속가능한 공간으로 만들며 건축 기술과 철학을 배웠던 일본 유학 시절

 
“구라시키 시는 흰색 회벽 창고로 유명한 지역이에요. 그곳에서 30년 이상 재생건축을 하신 선배를 만나 도제식으로 건축 철학과 기술 등을 배웠죠. 보통 작은 동네의 오래된 집들을 고치는 작업을 했는데, 대부분 200~300년된 오래된 건물이었어요. 집이 오래됐다고 무조건 부수는 게 아니라 사람들이 계속 살아갈 공간으로 만든다는 점이 무척 인상적이었죠.”
 
 
 
 

다음 세대에게 어떤 공간을 물려줄 것인가

 
이의중 대표는 일본의 국토교통성, 경제산업성 등 정부 부처의 큰 프로젝트에도 참여했는데요. 정부가 주도하는 게 아니라 마을 주민들이 회사를 설립하고, 그들이 결정하고 운영하는 민간 주도 방식을 경험하면서 재생건축이 지역민들과 함께 가야하는 일임을 알게 됐습니다.
 
“앞으로는 땅이 가진 가치를 찾고, 사용하는 방법이 관건이 될 것 같아요. 점점 경제 성장이 둔화될텐데, 이럴 때 우리는 후대에 어떤 집과 마을, 삶의 방식을 물려줘야 할지 생각해야 하는 거죠. 단순히 100층짜리 주상복합을 물려주는 것과 역사성과 지속성 있는 건물을 물려주는 것 중 무엇이 더 중요한가를 생각할 필요가 있어요.”
 
문화재는 문화재법으로 보호 받지만, 그렇지 못한 역사 있는 건물들은 없어지면 그 가치 또한 사라져 버리는데요. 이의중 대표는 그것이 안타까워 앞으로도 지역의 가치를 높이는 일에 적극 참여할 계획입니다.
 

인천여관, 송학동 주택, 구청국영사관 회의청 등 낡았지만 오래된 장소의 역사를 보존하면서도 새로운 모습으로 변화시키는데 힘쓰고 있다

 
“현재는 1965년에 지어진 인천 여관을 고치는 작업과 차이나타운 내 청국영사관 회의청 설계 작업을 하고 있어요. 인천 여관은 인디 레이블인 루비레코드가 지역민들과 음악을 나누는 공간으로 만들고, 회의청은 인천 대학교와 공동으로 설계 작업중인 공간인데요. 차이나타운이 음식점만 있는 거리가 아니라 화교들이 살고 있고, 청국의 역사가 숨쉬는 장소라는 걸 알려드리고 싶어요.”
 
이의중 대표는 재생건축을 하면서 바뀐 공간으로 인해 주변의 상가와 지역민들이 오히려 피해를 입는 상황을 늘 경계하고 있는데요. 지역이 위기를 극복하고 주민들과 함께 공간의 가치를 높이는 일에 자신의 역량이 쓰이기를 바라고 있죠. 다음 세대에게 물려줄 건축을 고민하는 이의중 대표의 재생건축이 더 많은 공간에 가치를 더하기를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