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을 고스란히 품은 골목, 만리재로

공덕동부터 서울역 서부까지 이어지는 길, 만리재로는 오랫동안 참 고요한 골목이었습니다. 이 길을 조용히 걷다 보면 숨겨진 보물을 발견할 때가 많은데요. 90년의 역사를 품은 이발소, 서울의 유일한 영화 세트장이었다가 재래시장으로 명맥을 이어오는 만리시장 등 시간을 고스란히 품은 공간이 이곳을 지켜내고 있습니다. 사색에 잠기기 좋은 골목, 만리재로를 소개합니다.
 

 
 
‘만리재’는 중구 만리동 2가에서 공덕동으로 넘어가는 고개를 말하는데요. 만리재로를 걷다 보면 고갯길이 ‘만 리’처럼 까마득하다고 붙여진 이름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경사가 가파른 구간을 만나곤 합니다. 하지만 ‘만리재로’ 이름의 진짜 유래는 조선 세종, 최만리라는 학자가 나고 자란 곳이라서 ‘만리’라로 불렸다고 해요. 만리재로는 공덕동부터 서울역 서부까지 이어지는 길을 말합니다.
 
 
 
 

묵묵히 세월을 버텨낸 깊이 있는 골목

 

 
“서울에서 제일 오래된 이발소야.” 1927년부터 3대째 이어오는 이남열 이발사의 목소리에 자부심이 넘칩니다. 지붕, 간판 등 모든 것이 낡았지만 매끈하게 이발을 한 것처럼 단정한 외관, 시간이 멈춘 듯 역사가 살아 숨 쉬는 내부까지 90년의 숨결을 품은 위풍당당한 기운이 느껴지는 곳이죠.
 

 
“내가 기술대로 잘 깎아 줄게. 이 하향식 기술을 터득하는데만 30년이 걸렸어. 한 달이 지나도 머리가 뻗치지 않아.” 하얀색 감자전분을 머리카락에 바르고, 반들반들 윤이 나게 길들인 가위질 소리 뒤로 연이어 덧붙여지는 한 마디, “가위로 장난치는 것은 이발이 아니야. 정석대로 제대로 깎아야 해.”
 

 
단순히 오래된 곳이라서 성우이용원이 만리재로의 터줏대감이 된 것은 아닙니다. 끊임없이 기술을 연마하며 다양한 연령층의 손님들을 만나 온 ‘이발 장인’의 열정과 삶이 만리재로의 역사와 잘 어우러졌기 때문이죠.
 

 
언덕 아래로 이어지는 만리시장 또한 오래된 서울을 만날 수 있는 곳입니다. 살기 바빠 잊고 지낸 학창시절 친구를 마주친 것처럼 정겨움에 마음이 포근해지는데요. 시장 인심이 실감나는 저렴한 가격의 분식집도 그냥 지나칠 수 없습니다. 학창 시절을 회상하며 떡볶이와 튀김을 먹는 추억의 맛은 값을 매길 수가 없죠.
 

 
만리시장은 과거, 영화 세트장이 있던 자리인데요. 한국 영화계의 거장 신상옥 감독이 안양에 새로운 세트장을 짓기 전까지 서울의 유일한 세트장이었다고 합니다. 그 시절 잘 나갔던 배우들이 만리재로를 수없이 오고 갔다는군요.
 

 
만리재로의 또 다른 역사가 될 새로운 가게도 빼놓을 수가 없겠죠. 다부진 석조건물이 눈에 띄는 베리스트리트 키친(VERY STREET KITCHEN)은 지금은 레스토랑으로 운영되고 있지만 100년 전에는 병원이었고, 한 때는 출판사로 사용되었던 곳입니다.
 
오래된 시간의 옷을 입은 이 공간은 들어서자마자 과거와 현재를 이어주는 묘한 공기가 감도는데요. 100년된 공간에 프랑스, 대만, 스페인 등 세계 각국의 길거리 음식이 식탁 위에 차려지면, 시공간을 초월하는 듯한 기분이 들죠.
 

 
만리재로의 끝은 자연스레 서울로7017과 연결됩니다. 서울로7017은 만리재로와 퇴계로를 연결하는 고가도로였는데요. 올해 5월, 차가 다니던 이 길은 이제 사람이 걷는 길이 됐죠. 서울로7017은 1970년대 만들어진 고가도로가 2017년에 보행길이 된다는 의미를 이름에서 담고 있습니다. 1970년도에는 셀 수 없이 많은 차가 이 고가도로 위를 지났는데요. 특히 만리동, 서계동 일대의 봉제 공장에서 동대문과 남대문 시장으로 물건을 실어 나르던 사람들의 삶이 녹아있는 길이죠.
 
만리재로를 걷는다는 건 세월이 만들어낸 보물을 찾아가는 여정 같습니다. 깊고 진한 멋을 풍기는 만리재로를 걸으며 잊고 지냈던 우리의 ‘역사’와 ‘추억’을 생각하는 시간을 가져보는 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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