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리소설작가 정명섭, 그가 도전하는 행복이란

서른 즈음, 인생의 막다른 골목에서 그는 달콤한 커피를 마셨습니다. 지친 영혼에 위로가 되어준 음료에 감동해, 커피를 만들어준 바리스타에게 말했습니다.

당신은 정말 행복하겠습니다. 이런 데서 일하니까요.

그러자 바리스타가 말했습니다.

그럼 당신도 한 번 해보세요.

그래서 그는 도전했습니다.
 
어느 날 그에게 늦은 사춘기가 찾아왔습니다. 누구의 아들이며, 어느 직장의 아무개 대리라는 소속보다, 자신을 온전히 표현하고 싶은 무엇을 찾고 싶었습니다. 문득 책에 박힌 저자의 이름이 눈에 띄었습니다. 자신의 이름을 온전히 드러내기에 그만큼 좋은 방법이 없을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책상에 앉았습니다.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으면서도, 글 쓰는 작업에 혼신의 힘을 다해 도전했습니다. 그는 행복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바리스타이자 <적패>, <연인, THE LOVERS>, <암살로 읽는 한국사> 등의 소설과 인문서를 쓰고 한국미스터리작가모임에서 활동 중인 작가 정명섭 님의 얘기입니다. 비 오는 저녁, 행복지기와 만난 그는 ‘도전할 때 가장 행복하다’고 말했습니다.

십 년쯤 전 바리스타 일에 처음 도전했을 때는 지금처럼 커피전문점이 많지 않았어요. 장래성이 있는 직업으로 보이지도 않았죠. 월급도 적고, 바리스타라는 개념조차 생소했으니까요. 심지어는 면접을 보러 간 커피전문점에서도 그런 얘길 했어요. 그런데 지금은 상황이 많이 변해서, 바리스타 일을 한다고 해도 사람들이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아요. 사회가 변하는 과정을 지켜보니 재미있더군요.
 
글에 도전했을 때는 정말 아무 것도 몰랐어요. 문학을 전공하지도 않았고, 따로 선생님의 가르침을 받지도 않았죠. 어느 정도였냐 하면, 페이지뷰도 안되고, 오탈자 검색도 안 되는 엑셀 프로그램을 띄워놓고 글을 썼거든요. 시작한 2, 3년 사이에 참 많이 썼어요. 그때 사람들은 바보짓 한다고 했지만, 그 시기가 오늘의 저를 있게 한 가장 큰 원동력이 되지 않았을까 싶어요. 아직 부족하긴 하지만, 지금은 제 경험과 생각들을 다른 사람들과 공유할 수 있는 위치까지 왔다는 게 좋아요.
 
제가 하고 싶었던 꿈 두 가지를 모두 이루고, 지금도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고 있으니 행복하죠.

새로운 분야에 도전하는 사람들은 많습니다. 그러나 도전하는 일이 모두 행복하게 끝나지만은 않죠. 때때로 도전하는 이들은 과정의 힘겨움으로 인해 꼭 필요한 요소를 놓치는데요, 정명섭 님은 행복한 결말을 위해 필요한 요소 가운데서도 ‘성실함’은 반드시 잊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흔히 ‘1%의 영감과 99%의 땀’이라는 말을 쓰잖아요. 글도 마찬가지예요. 저는 개인적으로 작품이 끊임없이 피를 흘리는 과정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쓰는 과정 중에 ‘내가 이것밖에 안되나.’, ‘생각이 이것밖에 나오지 않는구나.’하는 자괴감이 들기 때문이죠. 진지하게 글을 써서 작은 성공을 거둔 작가들도 그 과정이 너무 힘들어서 회피해버리는 경우가 있는데, 그런 부담에도 불구하고 성실해야 좋은 작가로 거듭날 수 있어요. 엉덩이 무거운 사람을 이기는 천재는 없거든요. 무슨 일이든 열심히 하는 게 제일 좋아요.


그의 도전은 아직 멈추지 않았습니다. 최근 그는 황금가지사의 <한국추리스릴러단편선> 시리즈의 작업에 참여하면서 신인작가의 발굴에도 힘쓰고 있습니다.

외국에선 추리스릴러소설의 파급력이 대단하지만, 한국에선 그렇지 않죠. 글 쓰는 환경이 척박하기도 하고, 독자들의 인식이 호의적이지 않은 걸 수도 있지만, 많은 원인 중에 한 가지만 꼽으라면, 그건 국내 작가들이 잘 쓰지 못해서일 거예요. 좋은 글은 어떻게든 읽히기 마련이거든요.
 
코난 도일이나 애거사 크리스티 같은 걸출한 추리작가들의 뒤를 이어, 서양에선 수많은 작가들이 배출되었죠. 우리나라에도 김내성씨, 김성종씨 같은 뛰어난 추리작가들이 있었지만, 뒤를 이을 좋은 작가들이 적은 게 문제라고 생각해요. 좋은 글을 쓰는 작가들이 늘면, 자연스럽게 국내에서도 추리스릴러소설이 사랑 받을 수 있겠죠.

보다 뛰어난 작가들이 조금이라도 양지에 나설 수 있게 멍석을 깔아주는 정도의 일이지만, 청탁한 원고가 책에 실리고, 독자들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았을 때, 신춘문예에 당선된 것보다 더 큰 기쁨을 느낀다는 그의 말에서, 성실함 그 이상의 애정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과거와 달리 문학작품을 접하는 경로도 많이 바뀌었습니다. 현재 정명섭 님도 지면이 아닌 포털사이트 다음에 <그들이 세상을 지배할 때>라는 SF스릴러를 싣고 있는데요 (http://bit.ly/qWL7CV), 모바일 기기의 발전이나 원소스멀티유즈의 경향이 도서시장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도 그는 긍정적인 변화라고 말했습니다.

예전에 책은 종이로 만든 것이라는 인식이 아주 강했죠. 지금은 스마트폰 같은 기기로 글을 읽는 사람도 많이 늘었는데, 그런 기기를 이용하는 연령층을 생각하면, 장기적으로 많은 도움이 될 것 같아요. 또 글이 영화나 드라마화되는 경우가 상당한데, 추리나 스릴러 장르는 제작비가 별로 안 들거든요, 하하하. 아무래도 사람과 사람 사이의 갈등을 조명하다 보니, 천 년이 지나도 영화나 드라마라는 게 존재하는 한 계속 파고 들게 될 거예요.

마침 주말에 읽을 책이 궁금했던 행복지기는 여름에 읽을만한 추리스릴러소설의 추천을 부탁했습니다. 망설임 없이 세 권의 책을 추천해주시는군요.

첫 번째는 <한국추리스릴러단편선>이요. 3편까지 나왔고, 올해 4편이 발간되는데요, 어느 권을 집으셔도 절대 후회하지 않으실 거예요. 두 번째는 정유정 작가의 <7년의 밤>, 여러 번 봐도 볼 때 마다 좋아요. 좀 어두운 내용일 수도 있지만, 사람과 글에 대해서 한번쯤 곱씹어보고 싶을때, 읽어보시길 강력히 추천합니다.
 
마지막으로는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수수께끼 풀이는 저녁식사 후에>라는 일본 작품을 추천할께요. 이 책은 천방지축 재벌2세 여형사와 독설을 퍼붓는 정체불명의 집사가 사건을 해결하는 얘기예요. 만화같이 말도 안되고, 추리도 유치하지만, 인물이 워낙 괜찮아서, 여러 에피소드를 하나같이 배꼽잡고 웃으면서 봤어요.


마지막으로 정명섭 님은 작가를 지망하는 학생들에게도 당부를 남겼습니다.

도전하는 일에 헌신할 준비가 되어있는지 생각해보세요. 그 다음엔 혼자보다 도움을 줄 수 있는 동료를 찾아보고, 습작으로 어느 정도 능력을 쌓았다면, 본인이 이제 0.000001%쯤 시작했다고 여기세요. 만보를 걷는다고 치면 첫 발자국을 남기기 위해 허공에 발을 디딘 즈음인 거예요. 열심히, 성실하게, 무조건 많이 읽고, 많이 쓰세요.

가족에게 감사하고, 글을 발굴하는 과정에서 본의 아니게 마음의 상처를 입혔던 사람들에게 미안하다는 그에게서, 도전과 성실함이 빚어낸 행복과 배려가 느껴집니다.
 
장마가 기승입니다. 혹시 새로운 도전 중에 지쳤다면, 멀리 떠나지 못하는 주말에 책 속의 세계로 떠나보는 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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