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 트렌드가 변한다, 가성비 보다 ‘가심비’

최근 단순히 제품의 성능만을 따지는 가성비 보다 가격 대비 마음의 만족을 추구하는 ‘가심비’ 소비가 주목받고 있습니다. 구매자의 심리적 만족에 따라 소비가 좌우될 가능성이 커진 것인데요. 당신의 선택을 이끈 소비의 기준은 무엇인가요? 시대에 따른 소비 트렌드의 변화와 요즘 사람들의 소비 유형을 알아봅니다.
 

 
 
 
 

소비 트렌드 변천사

 

 
‘가성비(價性比)’라는 말, 많이 들어보셨죠? 지난해까지만도 우리는 먹고 마시고 놀고 즐기는 모든 분야에서 ‘가격 대비 성능’을 추구하는 소비를 해왔습니다. 저렴하면서도 품질 좋은 마트 와인, 명품 브랜드와 비슷한 발색과 기능성을 가진 저렴한 브랜드의 화장품, 유통 단계를 줄여 가격을 낮춘 SPA 브랜드 의류 등 합리적인 가격과 품질이 상품 선택의 기준이 되었는데요.
 

SNS를 통해 입소문난 가성비 ‘갑’ 제품들. 이마트 ‘노브랜드’(왼쪽, 출처: 이마트 홈페이지), 필라이트 맥주(오른쪽, 출처: 하이트진로 홈페이지)

 
 
가격 대신 용량을 늘린 ‘가용비(價用比)’도 인기였습니다. 식품 및 뷰티 업계는 기존 제품 대비 용량은 1.5~3배 늘었지만 가격 상승률은 낮춰 경제적인 빅사이즈 상품을 내놓았고, 카페에서는 1리터짜리 커피가 등장했습니다.
 
그런데 소비 시장이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포미(For me)족, 욜로(YOLO)족, 1코노미(1인 경제)와 같은 ‘나’를 위한 삶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이제는 가격이나 성능 이전에 ‘내게 얼마나 만족을 주는가’가 또 다른 소비의 기준으로 떠오른 것이죠. 때문에 기업들은 가격과 가치에 민감한 소비자들을 두루 만족시킬 수 있는, ‘B+ 프리미엄’ 제품들을 선보였습니다.
 

횡성 한우로 만든 CU편의점 도시락(왼쪽, 출처: CU), 미국 바리스타 챔피언과 협업한 프리미엄 커피 ‘콜드브루 by 바빈스키’(오른쪽, 출처: 한국야쿠르트 홈페이지)

 
 
대표적인 B+ 프리미엄 상품이 편의점 도시락입니다. 유명 셰프가 개발한 메뉴를 출시하거나 맛집 인기 메뉴를 편의점용으로 만들면서 합리적인 가격 내에서 고품질을 이끌어낸 제품들이 ‘나를 위한 특별함’을 원하는 소비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았습니다.
 
최근엔 ‘가격 대비 만족감 비율’을 뜻하는 ‘가심비(價心比)’가 등장했습니다. 가격이 좀 비싸더라도 자신의 행복이나 즐거움을 위해 상품을 구입하거나 서비스를 이용하는 소비자들이 늘어난 것인데요. 가심비를 추구하는 소비자들은 가격이나 품질 이전에 나의 소비가 내게 만족감이나 즐거움과 같은 심리적 효용이 크다면 망설임 없이 지갑을 엽니다.
 

지난 1월 SK플래닛 11번가가 ‘가심비’를 테마로 진행한 해외직구 기획전

 
 
특히 이제 사회에 진입한 20~30대 젊은 층과 워라밸(워크 앤 라이프 밸런스)을 중시하는 직장인들을 중심으로 가심비 트렌드가 확산되고 있는데요. 업무 스트레스에 대한 보상으로 해외여행을 즐기고, 남들보다 개성 있는 물건이나 글로벌 이슈 상품을 갖기 위해 해외직구를 일상적으로 이용하며, 취미생활을 위해 드론이나 영상캠 같은 고가품도 기꺼이 사는 등 일도 중요하지만 삶의 가치관도 중요한 워라밸 세대들이 학업, 취미, 운동, 취향 등에 자신만의 소비를 늘려가고 있습니다.
 
 
 
 

워라밸 세대가 주도하는 가심비 소비 유형

 

카카오프렌즈-캘러웨이 골프공(왼쪽, 출처: 카카오프렌즈 홈페이지), 평창올림픽 굿즈인 평창스니커즈(오른쪽, 출처: 평창동계올림픽 홈페이지)

 
 
가심비 소비의 대표적인 예는 자신이 좋아하는 게임 캐릭터, 아이돌 등 특정 인물, 웹툰과 연관된 상품인 ‘굿즈(Goods)’ 소비입니다. 굿즈들은 수집욕구까지 불러일으킬 만큼 소비자들에게 기분 전환과 만족감을 안겨주죠. 온라인 서점에서는 굿즈를 이용한 마케팅이 활발합니다. 좋아하는 책의 제목이나 문장이 새겨진 1,500원짜리 머그컵을 갖기 위해 소비자들은 몇만 원어치의 도서를 구입하기도 합니다. 모두 가심비를 따른 소비입니다.
 

인형뽑기방과 저가 생활용품샵은 탕진소비의 성지다. MBC <나 혼자 산다> 방송에 등장한 인형뽑기 장면 (출처: MBC <나 혼자 산다> 캡쳐)

 
 
또한 ‘탕진잼(탕진+재미의 합성어를 줄인 말)’처럼 즐거움이나 재미를 위해 돈을 다 써버리는 소비를 하기도 합니다. 인형뽑기 승부의 짜릿함을 즐기며 가진 현금을 모두 소진했더라도 ‘즐겼으니 괜찮아’라고 위안합니다. 다이소 같은 저가상품 매장에서 물건을 대량 구매하며 ‘적은 돈이지만 마음껏 썼다’는 만족감을 느끼기도 합니다. 이때 지불한 돈은 소비자 입장에서는 일종의 ‘위안 비용’입니다.
 
가심비 트렌드는 안전과 건강 분야에서도 나타납니다. 지난해 살충제 계란, 햄버거병 파동, 간염소시지, 유해물질 생리대, 미세먼지 등 연이어 터진 화학물질에 대한 공포심이 확산되면서 소비자들은 불안감을 없애기 위해 더 비싼 돈을 주고라도 안정성이 입증되거나 건강을 위한 상품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소비자들은 안전성과 신뢰성을 위해 콩고기 등 대안 식품, 일반 제품 보다 3배 가량 비싼 천연소재의 생리대, 백만 원이 훌쩍 넘는 의류 관리 기계(스타일러)와 고기능성 청소기 등을 구입합니다.
 

나눔의 집 위안부 할머니 후원 팔찌를 판매하는 ‘애니휴먼’ 홈페이지

 
 
‘착한소비’로 불리는 윤리적 소비도 가심비의 일종입니다. 수익금이 위안부 할머니나 소방관을 돕는 데 쓰이거나 환경 보호 활동에 사용되는 후원 상품들은 내 소비가 단순한 소비에 그치지 않고 사회 기여로까지 이어진다는 점에서 소비 행위에 새로운 가치를 부여합니다. 이것도 소비자가 윤리적인 소비를 했다는 심리적 만족을 느낄 수 있다는 점에서 가심비적 소비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행복한 소비를 위한 기준은?

 
최근의 가심비 트렌드에는 ‘소확행(일상에서 작지만 확실한 행복)’을 추구하고, ‘한 번 사는 소중한 인생을 만족감 높은 소비로 즐겁게 살자’는 현대인의 라이프스타일이 투영돼 있습니다. 그래서 한편으로는 가심비 소비를 ‘플라시보 소비’라고도 부릅니다. 플라시보는 가짜 약을 먹고도 병이 낫는다는 기대와 믿음으로 인해 정말 증상이 호전되는 ‘위약 효과’를 말하는데요. 불안, 불신, 불황의 ‘3불(不) 시대’에 즉각적으로 사람들의 공허한 마음을 채워주는 수단인 가심비 소비는 일종의 위약이 되어주기 때문입니다.
 
어떤 경우는 비합리적인 선택 같지만, ‘비싸지만 그만큼 위안이 되니까’, ‘꼭 필요한 물건은 아니지만 좋은 일을 했으니까’, ‘그동안 아꼈으니까 괜찮아’라며 행복한 소비를 했다는 믿음을 갖는 사람들. 결국 소비의 기준이 과거 저렴한 가격, 품질 같은 상품의 객관성에서 이제는 ‘상품을 통해 내가 무엇을 얻었는가’와 같은 소비자의 주관적 판단으로 옮겨가고 있습니다. 앞으로는 브랜드나 기업의 가치보다는 제품을 구입하는 소비자들의 심리적 효익을 저격할 수 있는 기업이 새로운 소비 시장을 주도할 것으로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