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과 기술이 어우러진, 창신길 봉제골목

동대문의 화려한 불빛을 뒤로하고 묵묵히 한 길을 가고 있는 창신길 봉제 골목. 실처럼 얽힌 좁은 골목에는 솜씨 좋은 봉제 장인과 예술인이 살았던 근대유적이 뒤섞여 있습니다. 기술과 예술이 어우러져 더욱 특별한 영감을 주는 곳, 창신길 봉제골목을 걸어봅니다.
 

 
 
창신길 봉제골목은 조선시대 한양도성 밖 첫 번째 동네로 유명했습니다. 퇴직한 궁녀들이 모여 살았던 곳이기도 하고요. 창신동은 조선시대 한성부 행정구역이었던 인창방과 숭신방의 가운데 글자를 하나씩 따와 붙여졌는데요. 지금은 창신길이라는 이름보다 ‘봉제 골목’이란 별칭으로 더 익숙한 골목입니다.
 
1970년대 동대문 의류 산업이 번성하면서 인근의 창신동까지 봉제공장이 하나둘씩 생겨났기 때문인데요. 지금은 약 900여 개가 넘는 봉제 공장이 이 골목을 지키며 패션 산업의 메카로 명맥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손끝에서 시작된 역사의 골목

 

 
동대문역 1번 출구에서 멀지 않은 곳에 ‘봉제거리 박물관’이 있습니다. 말 그대로 ‘거리 박물관’인데요. ‘봉제용어’, ‘의류생산 공정 8단계’, ‘봉제공장의 24시간’ 등 안내판이 붙어 있는 ㄷ자 골목을 따라 걸으면 거리 자체가 살아있는 박물관임을 실감할 수 있습니다.
 

 
올해로 40년째 여성복을 만들고 있는 재봉사는 “처음엔 먹고 살기 위해서 재봉틀 앞에 앉았죠. 지금은 수십 년 동안 갈고 닦은 기술에 자부심이 생겼어요. 요술처럼 하루 만에 뚝딱 옷 한 벌을 만들어내는 거 대단하잖아요”라며 자신의 이야기를 전했는데요. 이어서 “우리가 마지막 재봉사일 것 같아 섭섭해요. 젊은 재봉사가 이어가면 좋을 텐데”라며 아쉬움을 토로했습니다.
 

 
드륵 드르륵 돌아가는 재봉틀 소리와 쉴 틈 없이 완성된 옷을 실어 나르는 오토바이 소리로 가득한 봉제 골목은 당고개까지 이어집니다. 도당이 있는 낮은 언덕이라는 의미의 당고개는 조선시대에는 점술가들이 모여 살았다고 하는데요. 일제 강점기 때 뒷산인 낙산의 바위가 채석장으로 변한 후 더 이상 점괘가 맞지 않는다며 이곳을 떠났다는 이야기가 전해지는 곳입니다.
 

 
지금은 언덕길 양옆으로 아기자기한 벽화가 골목에 생기를 더해주고 있는데요. 가수 김광석 씨가 결혼하기 전까지 이 골목에서 살았다고 알려지면서 찾는 이가 부쩍 늘고 있습니다.
 

 
당고개를 뒤로하고 다시 동대문역으로 내려오는 길목에 창신 골목 시장이 있습니다. 창신 골목 시장에는 군침을 돌게 하는 맛있는 음식과 오래된 식당이 줄줄이 이어지는데요. 쫀득쫀득한 족발에 매콤한 양념이 더해진 매운 족발이 특히 인기를 끌고 있으니 이곳에서 출출함을 달래보셔도 좋겠습니다.
 

 
이 골목에 오면 꼭 한번 들려야 할 곳이 하나 더 있는데요. 비디오아트의 선구자, 아티스트 백남준의 기념관입니다. 백남준은 1932년부터 1950년까지 창신동에서 유년 시절을 보냈는데요. 그 집터의 일부인 작은 한옥은 백남준을 기억하는 ‘백남준 기념관’으로 재탄생 됐습니다. 백남준 기념관에서는 손때 묻은 애장품을 비롯해 예술 세계가 드러나는 작품까지 그의 발자취를 따라가볼 수 있습니다.
 

 
창신길 봉제골목은 봉제 산업을 이끈 봉제 장인과 이곳에서 살았던 예술가에게는 마음속 깊이 간직한 고향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노력이 깃든 장인의 삶과 예술인의 혼이 묻어 나는 창신길을 걸으며 일상에서 영감을 얻어보는 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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