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날로그 감성을 간직한, 청계천로 세운상가 골목

오래된 서울과 산업 근대화의 압축된 역사를 품은 세운상가 골목. 전자회로처럼 촘촘하고 복잡한 골목에서 천천히 흘러가는 구도심의 과거와 현재를 느낄 수 있는데요. 잊힌 아날로그의 가치가 재발견되는 골목으로 떠나봅니다.
 

 
 
 
 
세운상가 골봉에 위치한 광명상회, 신전상회 전면
 
청계천로 세운상가 골목의 역사는 일제 강점기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원래 이곳은 소개공지 즉, 폭격으로 화재가 번지는 것을 막기 위해 비워 둔 공터였는데요. 이후 한국전쟁이 일어나고 방치된 빈 땅에 피난민들이 몰려 살게 되면서 자연스레 판자촌이 형성되었죠.
 
한동안 서울의 대표적인 빈민가였던 이 골목은 1968년 최첨단 주상복합 건물인 ‘세운상가’를 세움으로써 어두운 과거를 뒤로하고 새로운 전성기를 맞이했는데요.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최초의 종합전자상가이자 모두가 살고 싶어 하는 최신식 주거공간으로 호황을 누렸어요.
 
 
 
 

고장 난 추억에 새 생명을 불어넣는 골목

 
세운전자상가 골목에 위치한 점포, 골목에 전시된 게임기
 
세운상가는 ‘세상의 기운이 다 모인다.’는 의미를 담아 지은 이름인데요. 그 상호처럼 전자기기나 부품, 기술 장인 등이 한자리에 다 모여 있던 터라 이곳에서는 ‘도면만 있으면 탱크도, 잠수함도 만든다.’는 우스개가 떠돌기도 했죠.
 
제일 잘나가던 시절인 1970, 80년대를 지나 용산전자상가가 조성되고, 강남이 개발되면서 90년대 이후로는 쇠퇴화의 길을 걷게 됐는데요. 2년 전, 도시 재생의 일환인 ‘다시 세운’ 프로젝트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면서 슬럼화된 세운상가 일대도 활기를 되찾고 있죠.
 
세운상가 수리수리협동조합 입구
 
수리수리협동조합도 이즈음 탄생했는데요. 오디오, 조명 등 특화된 분야에서 30년 이상 기술을 갈고 닦은 장인들이 고장 난 추억의 물건을 수리하기 위해 뜻을 모았죠. 전국 각지에서 저마다의 사연이 묻은 기기는 이분들의 손을 거쳐 남다른 추억으로 거듭난답니다.
 
반세기 가까이 이곳을 지킨 한 오디오 장인은 “골목골목마다 분야별 전문가들이 숨어 있으니 이곳에선 못 고칠 게 없다”며 자부심을 드러냈습니다. 또, “버려질 뻔했던 기계가 고쳐진 후 이를 찾아가는 고객들이 진심으로 기뻐할 때 나도 기쁘다”며 보람된 순간을 나눴습니다.
 
세운상가 옥상 전망대
 
이어 9층 옥상 전망대로 발걸음을 옮겼는데요. 구도심의 민낯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동서남북으로 광장시장, 종로, 남산, 종묘까지 품은 빼어난 전망 덕에 너도나도 카메라를 꺼내 기념촬영 하기 바쁘죠.
 
닭도리탕 가게인 계림부터 늘어선 피맛골 먹거리 골목 입구
 
세운상가의 입구 오른쪽으로는 두 사람이 어깨를 맞대고 겨우 지나갈 정도로 좁은 ‘피맛골 먹거리 골목’이 있는데요. 세운상가와 함께 50여 년간 상인들의 입맛을 책임져왔습니다.
 
1980년대까지는 ‘닭볶음탕 골목’으로도 불렸다고 하는데요. 지금은 줄 서서 먹는 닭볶음탕 가게인 계림만 남아있어요. 마늘 폭탄 닭볶음탕의 얼큰한 매력에 빠져보는 것도 좋겠죠.
 
종묘 입구
 
세운상가와 마주하고 있는 종묘로 마지막 발걸음을 옮깁니다. 종묘는 조선 왕과 왕비의 신주를 모시고 제를 올리는 곳이죠. 정전을 비롯한 건축물과 제례, 제례악이 잘 보존 계승되고 있어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습니다.
 
세운상가 골목은 아날로그 세대에게는 어린 시절 향수를 선사하고, 디지털 세대에게는 먼 훗날의 추억으로 남을 현재를 선물하는 공간이죠. 봄의 문턱에 선 3월, 봄바람처럼 가벼운 발걸음으로 세운상가 골목을 거닐어 볼까요?
 
일러스트로 그린 종로 세운전자상가 인근 맛집과 수리수리협동조합위치를 알려주는 지도
 
 
 
 
 글/ 이주화 여행작가 이미지 / MEDIA S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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