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가 서로에게 변호사가 되어주는 일

요즘 유행어 중 “판관 포청천 병에 걸렸다”는 말이 있습니다. 고민을 상담했는데, ‘그건 네가 잘못했네’ ‘그건 이렇게 했어야지’하고 빠르게 결론 내리고 훈계하는 상대에게 섭섭함을 담아 쓰는 표현이죠. 물론 냉정한 판단을 해주는 게 필요할 때도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친한 사람에게 고민을 털어놓는 건, 그가 사려 깊게 들어주고 따뜻한 말부터 해주길 기대해서인 경우가 대부분이잖아요. 기대고 싶은 사람에게조차 비난받고 속내를 털어놓지 못한다면 인생이 너무 팍팍할 것 같습니다.
 
어릴 땐 뒤집기 한 번에 박수받고, 배시시 웃기만 해도 아빠가 들고 있던 카메라의 플래시가 터집니다. 하지만 점점 커가면서 외모와 성적으로 비교당하고, 형제들과도 비교당하며 우리는 어른이 되죠. 공부를 하면 성적에 따라 순위가 매겨지잖아요. 자본주의 사회에서 일이란 곧 나의 가치가 연봉으로 환산된다는 뜻이기도 하고요. 성장이라는 건 결국 자기가 쓸모 없지 않다는 걸 끊임없이 증명하는 과정이기도 한 것 같습니다.
 
존재만으로 귀여움을 받았던 때는 영영 지나갔고, 앞으로는 평가받을 일만 남았습니다. 그렇게 냉혹한 모험을 계속해야 하는 우리에게 꼭 필요한 건 언제든 돌아갈 수 있는 정서적 베이스캠프가 아닐까요? 어른들이 그토록 열렬히 사랑을 찾아다니는 것도 사실은 어릴 때 받았던 무조건적인 지지가 그리워서 그런 게 아닐까요? 소중한 이가 고민을 상담하면 판단은 잠시 뒤로 하고, ‘힘들었겠다’하고 그 사람이 듣고 싶었을 말부터 먼저 해주면 좋겠습니다. 모두가 나에게 판사 같고 검사 같은 이 때에, 한 명쯤은 변호사 같은 사람도 있어야 세상의 균형이 조금은 맞지 않겠어요.
 
 
풀밭에 앉아서 꽃잎을 갖고 장난치는 두 아이
 
 

‘모두가 나에게 객관적인 이 세상에서
 
끝없이 예뻐해 주는 한 사람을 네가 가질 수 있다면’

 
– 난다, ‘거의 정반대의 행복’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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