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 싶어서 만나는 사람

대학 시절, 뜻대로 되지 않는 일들 때문에 혼자 도망치듯 할머니 댁에 간 적이 있어요. 농사일을 마친 할머니가 제 이름을 부르며 허둥지둥 들어오시던 모습이 생각나요. “갑자기 어쩐 일로 왔어?” 하시는 말에 “할머니 보고 싶어서 왔지” 했더니 옹이 같은 할머니 눈가와 볼이 활짝 펴지던 것도 기억나고요. 할머니가 해주는 밥을 먹고 2주 정도 있다가 돌아온 게 벌써 10년 전인데요. 그뿐이지 별일은 아니었는데도 할머니 인생에선 그 기억이 강렬한가 봐요. 그 이후 저를 볼 때마다 항상 “날 보고 싶다고 왔던 이쁜 놈”이라며 사람들에게 자랑을 하곤 했어요. 이제 85세를 넘긴 할머니는 눈동자가 투명해졌고, 했던 말을 하고 또 합니다. 그런데도 할머니는 아직도 그 오래된 장면을 본인 인생의 가장 좋은 순간 중 하나로 여기는 거예요. 아직도 “그때도 그러더니 할머니 보고 싶어 와줬구나” 하며 감격하죠. 1년에 한두 번 보는 할머니를 앞으로 몇 번 더 볼 수 있을까 계산해봤더니 지금대로라면 스무 번도 남지 않더라고요.
 
할머니에게 그랬듯 우리 인생에서 대단한 기억은 생각해보면 큰 이벤트가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들로부터의 인정, 만남 같은 데서 오는 것 같아요. 그런 순간들이 언제든 또 있을 것 같이 느껴지지만 막상 계산해보면 서로의 타이밍이 딱 맞아떨어지는 때는 많지 않죠. 봐야 하니까 만나는 사람이 넘치는 세상에서, 보고 싶어서 만나는 사람들을 최대한 많이 봐야 우리 삶의 균형이 맞을 거예요. 보고 싶은 이들 중엔 결국 가족이 많을 테고요. ‘우리 집’이라는 말이 품는 뜻에도 아마 ‘사람’이 생략되어 있을 거예요. 다가오는 명절엔 집으로 돌아가 보고 싶던 사람들을 많이 만나시길 바랍니다. 명절의 목적은 결국 그뿐이죠.
 
 
장기자랑 하는 아이를 바라보는 가족들의 사진
 
 

‘나의 집이란 장소가 아니라, 사람들이다.’


 
– 로이스 맥마스터 부욜
 
 
 
 

 
 
 
 

페이스북 트위터 카카오스토리 더보기
밴드 url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