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을 살고 싶은 한 메모주의자의 행복

 

메모는 삶을 위한 재료이자 예열과정이라고 믿는 자칭 메모주의자 정혜윤 작가! 메모를 통해 자기만의 작은 질서, 작은 실천, 작은 의식(ritual)을 갖는 것이 행복이라고 믿는 <아무튼, 메모>의 저자 정혜윤 작가의 행복 이야기를 들어봅니다.

 
 
 

메모주의자가 되다

 

 
‘비메모주의자’였던 내가 ‘메모주의자’가 되기까지, 정말 수많은 이유가 있지만, 생각해보자면 누군가가 메모하는 것을 보면서 자극을 받았던 일이 떠오른다. 친구와 대화를 하는데 내가 무슨 말을 하니 친구가 “그것 참 좋은 말이다!” 하면서 즉석에서 노트를 꺼내 적는 것을 본 적이 있다. 그 모습이 참 좋아 보였다. 감탄스러울 만큼 영감이 많은 친구라서 오히려 늘 그 친구한테 배우곤 하는데, 그때 격려 받는 느낌도 들었지만 더 좋았던 것은 그 표정이 어린아이처럼 참 순수해 보였던 거다. ‘아직도 배우려 하는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 뒤에 나도 누군가가 좋은 말을 하면 “잠깐 적어도 돼요?”라고 말하고 얼른 간단히 한 줄로 적는다. 그렇게 천천히, 서서히 메모주의자가 되어갔다.
 

 

헨젤과 그레텔은 어느 날 자신들이 버림받을지 모른다는 것을 알자 밤에 몰래 나가 돌멩이를 주워온다. 돌아갈 길을 찾기 위해서다. 메모하는 이유는 그것과 다르지 않다. 길을 잃었을 때 길을 찾기 위해서, 새가 쪼아 먹어 버릴 빵 부스러기가 아닌 단단한 돌멩이를 챙기는 것이다. 달빛에 비친 돌멩이가 어쩌면 우리를 새로운 이야기가 펼쳐지는 곳으로 멀리 데려다줄 수도 있다.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기 때문에 어디로도 가지 못하는 것과는 다르다. 확실히, 내 손으로 직접 적은 메모가 제시하는 길이 있다.
 
내가 주로 메모하는 것들은 책에서 읽은 좋은 구절들이다. 책에는 우리가 안심하고 믿어도 되는 좋은 생각들, 좋은 이야기들이 많다. 그 다음에는 누군가 들려준 좋은 이야기들을 간단히 키워드로라도 적어놓는다. 또, 마음을 설레게하는 아름다운 풍경은 꼭 적는다. 특별히 아름다운 보름달, 구름, 한강, 새. 그리고 아름다운 순간에 대한 짧은 스케치 등이다.

 
 
 

메모가 기록 이상의 힘을 가질 때

 

 
메모는 때때로 강한 힘을 가진다. 가슴에 납덩이가 있을 때다. 무슨 말이냐면 마음이 무거워질 때 메모장을 보면 어딘가에 분명히 그 상황에 적용시킬 좋은 구절이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가 가진 가장 좋은 생각, 가장 멋진 문장으로 힘을 낼 수 있다. 우리의 운명은 우리가 의지하고 기억하려 하는 것과 교차하게 된다. 그때 메모는 지치고 슬픈 자아를 돌보는 스승과 같다. 메모장의 좋은 구절은 우리와 영혼을 공유하려고 존재한다.
 
그리고 메모는 일을 할 때도 꽤 많은 영향을 준다. 자기 메모장을 가진다는 것은 혼자 일하지 않게 되는 것과 같다. 수많은 조력자들을 모시고 일하게 되는 셈이다. 메모장 안에는 별표, 하트표시, 밑줄, 형형색색 마크. 내가 중요성을 부과한 온갖 것들이 들어있다. 그것은 종이 위에 쓰여진 글씨 이상의 의미가 있어 놓치지 않도록 잘 붙잡아 두어야 한다.
 
‘메모장이 없으면 나는 아무것도 아니다.’라고 말한 옛 시인이 생각난다. 그만큼 메모장을 믿었던 거다. 메모장은 그것이 없을 때보다 숙련되고 강력한 힘으로 일을 할 수 있게 도와준다. 우리의 좋은 생각이 어딘가에 모여있다면 뭘 하든 0에서 시작하지 않아도 된다. 사실, 혼자가 아니라는 느낌 그 자체가 정말 좋은 거다. 흩어지지 않고 내가 뭔가를 골똘히 생각했다는 흔적이 어딘가에 모여있다는 것이 참 좋다.

 
 
 

마음의 빈 공간을 채우는 문장들

 

소개하고 싶은 문장이 정말 많다. 그중 ‘단어를 쓴다고 생각하지만 단어를 살아낸다’는 문장이 떠오른다. 이를테면 ‘일희일비하지 말자’ 라고 썼다면 언어의 리듬이 마음에 들어서 써놓는 경우도 드물게 있긴 있겠지만 심지 굳게 살고 싶어서일 것이다. ‘아자아자!’라고 썼다면 힘을 내 살고 싶어서일 것이다. 그렇게 쓰는 것이 곧 살아내는 일이다.

 

 

‘우리 인생에 약간의 좋은 일과 더 많은 나쁜 일이 일어난다. 좋은 일은 그냥 놔둬라. 나쁜 일은 바꿔라. 더 나은 것으로.’라는 문장이 있는데 이 나쁜 일을 더 나은 것으로 바꾸려면 정말 좋은 생각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결국 메모는 우리 인생에 일어난 다른 많은 일들처럼 삶의 재료고 우리는 그 재료들을 잘 섞어서 자기 삶을 만드는 것이다.
 
어쨌든 메모는 종이와 펜을 필요로 한다. 일단 그 둘만 있으면 된다. 살다 보면 “마음이 텅 빈 것 같아!” “공허해.” 라는 말 자주하게 되는데, 이 마음의 빈 공간을 오래 견딜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빈 공간을 급히 채우고자 한다. 거기서 많은 일들이 일어난다. 그러나 노트의 빈 공간을 만약 나에게 가장 좋은 것으로 채우기 시작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그렇게 파편은 점점 모여 하나의 삶이 된다.

 
 
 

메모가 주는 행복

 


 

한 번은 친구와 이런 일이 있었다. 나는 뭔가 일이 잘 풀리지 않으면 위산과다로 속이 쓰리다. 그 사실을 잘 아는 친구와 함께 ‘내장리얼리즘파’를 만들었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내장이 리얼하게 쓰린 사람들의 모임이다.

 

‘내장리얼리즘파’ 런칭기념으로 친구가 그림을 한 장 그려줬다. 내가 빨간 원피스를 입고 다리를 흔들면서 의자에 앉아있는 그림이다. 입에서는 위산이 분수처럼 솟구친다. 그 그림을 자꾸 보니 위산과다가 멎고 재밌어서 다른 파도 몇 개 만들었다. 이를테면 ‘발꿈치파’다. 발꿈치파는 트로이 전쟁의 영웅 아킬레우스가 발꿈치 때문에 죽었다는 신화를 애지중지하는 파다. ‘발꿈치파’는 각자 마음의 치명적인 약점을 ‘내 발꿈치’ 라고 부른다. 발꿈치가 마음껏 활개치도록 내버려둔다면 너도 쓰러질 것이다! 이런 문장을 부적처럼 품고 있다.

 

‘미니멀주의자들’도 만들었는데 인생은 결국 미니멀리즘이라고 믿는 사람들의 모임이다. 인생이 ‘모든 것은 떠나고 정말 소중한 소수의 것만 남는다’로 좁혀진다고 생각해서다. 이에 따른 상세한 메모놀이가 몇 개있다. 예를 들면 미니멀주의자들은 어떤 의상을 입을까? 등등. 그냥 노는 것 같지만, 잠시 현실을 떠나 상상력이 날개를 펴는 시간이기도 하고 상상력과 꿈에 따라 삶을 만들어가는 시간이기도 하다.

 

 

메모는 기본적으로 파편이다. 어떤 작은 생각모음, 서로 연결이 되지 않는 짧은 글들의 모음. 그 파편이었던 것이 한 편의 글이 되기도 하고 내 생각이, 내 삶이 되기도 한다. 파편이 점점 형태를 갖추게 되는 거다. 창조는 소수의 특권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일이고 모두가 자기 삶의 창조자가 될 수 있다. 나에게 행복은 “그래, 이게, 내 삶이야! 제대로 해내는 중이야! ”라고 스스로 인정할만한 어떤 순간을 만나는 거다. 그래서 메모는 나에게 행복이자, 발견이다.

 
 
 
지금까지 CBS 라디오 피디이면서 <아무튼, 메모>를 출간한 정혜윤님의 메모 이야기를 들어봤습니다. 메모하는 습관은 곧 삶을 만들어가는 행위라는 이야기를 나눠주셨는데요. 메모주의자 정혜윤 작가가 메모를 통해 나만의 질서를 만드는 방법이 궁금하신 분들은 행복발견 2편을 기대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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