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향기를 내 손으로 만들어 가는 행복 with 조향사 김태형

 

꽃은 언젠가 지게 되지만, 꽃이 뿜어낸 향기만큼은 오랫동안 우리의 감성 속에 남아 있습니다. 보이지도, 만져지지도 않지만 강력한 존재감을 가지고 있는 향. 조향 아카데미 ‘아뜰리에 드 가브리엘(Atelier de Gabriel)’에서 사람들에게 향의 아름다움을 가르치는 조향사 김태형님은 “모든 향수에는 향을 만든 사람의 기억과 감정, 그리고 메시지가 담겨있다”고 말합니다. 세상에서 가장 향기로운 직업을 가진 김태형님의 이야기를 들어볼까요?

 

 

 

향기라는 미지의 세계를 탐구하러 떠난 프랑스 유학 길

 

저는 고등학교 때까지 고생물학자를 꿈꾸던 평범한 이과 학생이었습니다. 우연히 교과서를 통해 ‘조향사’라는 이색 직업이 있다는 걸 알게 됐어요. ‘예술과 과학의 경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창작물을 만들어내는 직업’이라는 소개 문구에 매료되고 말았습니다.

제가 고생물학자를 꿈꾸던 당시, 조향사는 마치 상상 속의 직업처럼 느껴졌습니다. 조향사로 활동하는 분도 많지 않아서 직업으로 삼기 위한 구체적인 길도 거의 알려지지 않은 상황이었는데요, 인터넷 검색을 통해 세계 최고 조향 학교로 알려진 프랑스의 ISIPCA에 대해 접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고등학교를 졸업하기도 전에 무작정 유학을 떠났죠. 젊은 날의 낭만을 가지고, 완전히 새로운 직업의 세계에 혈혈단신 뛰어든 것입니다.

 

 

 

 

향수라 쓰고 예술이라 읽는, 조향의 세계

조향사는 세상에 없는 향을 만들어 내는 건 기본이고, 그 향에 메시지를 담을 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향을 맡은 사람들이 그 메시지를 읽어낼 수 있어야 된다고 믿고 있죠. 하지만 그 메시지가 꼭 향을 만든 사람이 의도한 것과 일치할 필요는 없습니다. 문학 작품을 읽으며 얻게 되는 감동이나 교훈이 독자마다 다르듯이, 향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같은 향수지만, 뿌리는 사람에 따라 다른 느낌을 얻을 수 있는 것이죠.

 

톨스토이가 ‘예술은 소통이다’라고 얘기를 했는데, 그런 의미에서 향은 하나의 예술이자 소통과 같다고 생각해요. 향을 만들어 내기 위해서는 우선 주문하는 사람이 제시하는 요구를 이해해야 합니다. 이것을 향에 적용하는 과정이 소통이고, 그렇게 함으로써 시향자들을 위한 향수를 만들어 내는 과정 자체가 예술이라고 생각합니다. 제품을 생산한다기보다는 의뢰한 고객이나 앞으로 향을 맡게 될 사람에게 페르소나*를 선물한다고 생각하며 조향에 임하고 있습니다.

*페르소나: 고대 그리스 가면극에서 배우들이 쓰는 가면. 현대에는 자신의 정체성과 사회적 역할을 드러내기 위해 사용하는 고유 이미지를 뜻하는 용어로 주로 쓰임

 

일상 속에서 생기는 감정이 매우 중요한데요. 과거에 느꼈던 감정들이 영감으로 작용하기도 합니다. 그 감정이 발현된 시간, 장소가 새로운 향을 만드는 원동력이자 밑거름이 되는 것이죠. 그동안 만든 향수 중 ‘43번가’를 예로 들면, 옛 연인과 함께 걸었던 거리와 시간을 떠올리면서 만든 향수인데요, 그리움이라는 감정이 바탕이 되었기에 그 기억을 담은 새로운 향수로 탄생할 수 있었습니다.

 

 

 

결과를 예측할 수 없는 향의 조합, 그래서 더 매력적인 조향사의 삶

 

빨간색이랑 노란색을 섞으면 주황색이 나온다는 걸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실제로 두 색을 섞어봐도 정말 주황색이 나오죠. 하지만 향은 A와 B를 섞으면 C가 나온다는 공식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향의 원료는 눈에 보이지도 않고 잡히지도 않아 조합의 결과를 예측하는 것이 어렵기 때문입니다.

 

그 점이 조향사의 고충이자, 가장 큰 매력입니다. 결과를 예측할 수 없기에 늘 가보지 않은 길을 직접 걸어보는 것이고, 그래서 원하는 향을 성공적으로 조향했을 때 쾌감도 큰 것 같습니다. 과학자들이 수많은 실험 재료와 조건을 변경해 가며 실험을 거듭하듯이, 조향사도 수많은 시도와 수정을 거듭하여 하나의 향수를 만들어냅니다. 그렇게 원하는 향이 완성되면, 지금까지 힘들었던 일들은 모두 잊게 되고 더없이 행복의 순간을 맞이할 수 있습니다.

 

 

사실, 김태형님은 전문적으로 향을 연구하는 ‘조향사’라는 말보다는 ‘향을 하는 사람’이라는 말로자신을 담백하게 표현하길 더 좋아한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브랜드를 론칭하는 것보다는 향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큐레이션을 하는 일에 더 많은 의미를 두고 있습니다.

 

새로운 길, 새로운 향기를 향한 그의 열정과 기억이 담긴 아주 특별한 향이 또 하나 탄생하기를, 그 향으로 행복한 사람이 늘어나기를 미디어SK도 설렌 마음으로 기대해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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