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바퀴로 춤을 추는 댄스스포츠 선수, 댄서 채수민

 

무대 위에서 가장 빛나는 댄서. 오늘 소개할 채수민 님은 조금 특별한 방법으로 춤을 추는 댄서입니다. 바로 두 바퀴와 함께 춤을 추기 때문인데요. 장애인 댄스스포츠 연맹 소속 선수로 활동하며, 휠체어 위에서 자유롭고, 행복한 채수민 댄서를 소개합니다.

 

자신에게 춤은 ‘삶의 전부’라고 이야기하는 채수민 댄서. 그녀에게 춤이 가지는 의미는 남다르기 때문인데요. 춤을 추는 순간, 가슴 뛰는 설렘과 새로운 인생을 살아갈 용기를 다시금 느꼈다고 합니다. 자신의 모습 그대로를 사랑할 줄 아는 휠체어 댄서, 채수민 댄서를 만나 보겠습니다.

 

 

 

경쟁보다는 즐거움을 택한 댄서

 

채수민 댄서는 어렸을 때부터 에너지가 넘쳤습니다. 그 에너지를 발산하기 위해 수영부터 농구, 축구와 인라인까지 안 해본 스포츠가 없을 정도였는데요, 그 중 테니스는 선수까지 고려해볼 정도로 흥미를 느끼기도 했습니다. 그러다 중학교 때 자신의 에너지를 발산할 새로운 장르를 만나게 됩니다.

 

“중학교 3학년 때 시작한 뮤지컬 동아리에서 스포츠와는 다른, 춤만의 매력에 빠지게 됐어요. 뮤지컬 공연을 서면서 연기와 노래 그리고 사람들과 함께하는 춤까지, 특히 춤에 흥미를 느끼게 되었죠. 경쟁보다는 음악에 맞춰서 함께 즐길 수 있는 춤의 매력을 느껴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끊임없는 경쟁 속에 자신을 한계까지 몰아붙여야 하는 스포츠 대신 춤에 관심을 가진 이후 한양대 실용무용과에 입학해 춤에 대한 꿈을 더욱 키워갔습니다. 특히 여러 사람이 함께 무대에 올라 서로에 대한 존경을 자유롭게 표현하는 힙합에 큰 매력을 느꼈죠. 하지만 갑작스럽게 찾아온 사고로 인해, 채수민 댄서의 많은 것이 바뀌게 되었습니다.

 

 

 

휠체어와 함께 찾아온 새로운 기회

 

 

 

“대학교 3학년 2학기 기말고사를 일주일 앞두고 사고를 당했어요. 어느 순간 눈을 떠보니 중환자실이었죠. 정신을 차리고 나서도 한참 동안 실감이 나지 않았습니다. 한 3개월 정도면 다시 땅에 발을 딛고 걸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사고가 난지 4개월째에 접어 들어서야 이제 다시 걷는 것이 아니라 휠체어에 적응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던 것 같습니다.”

 

그 당시 병실에서 눈 뜨자마자 든 생각은 ‘학교에 가고 싶다’는 것이었다고 합니다. 실용무용과 학생으로서 학교에 다니며 춤을 추는 것이 너무 행복했기 때문에, 빨리 학교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컸죠. 휠체어를 타는 삶을 받아들인 이후에도 채수민 댄서의 걱정은 서울에 위치한 학교를 통학하는 일과 평생의 동반자로 생각했던 춤을 휠체어로 출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이었다고 합니다.

 

고민에 빠진 채수민 댄서를 도와준 사람은 한 재활병원의 사회복지사였습니다. 춤을 계속 추고 싶다는 이야기를 듣고 장애인 무용가로 활동 중인 최종철 선수를 소개해준 것인데요, 최종철 선수는 20년째 휠체어 위에서 춤을 추는 무용가로 휠체어 댄서의 길을 먼저 걷고 있는 선배이기도 했습니다. 채수민 댄서는 최종철 선수를 만나 휠체어 댄스와 댄스 스포츠를 처음 접하게 되고 댄스 스포츠의 매력에 빠진지 한 달만에 휠체어 댄서로 대회를 나가며 선수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자신을 사랑할 줄 아는 댄서

 

 

휠체어 댄스 스포츠의 매력에 빠져 물 흐르듯 새로운 춤을 시작했지만 휠체어를 타고 춤을 추는 건 생각처럼 쉽지 않았습니다. 오랫동안 춤을 췄음에도 불구하고 일상용 휠체어보다 훨씬 큰 경기용 휠체어를 컨트롤해 춤으로 소화하는 일이 힘에 부쳤기 때문입니다. 사고로 인해 흉추 3, 4번에 손상을 입고 가슴부터 다리까지 마비 상태인 채수민 댄서는 오로지 손 힘으로 휠체어를 조작해야 했습니다. 이전에는 많이 사용해본 적 없는 손 근육을 주로 사용하다 보니 엄지손가락의 인대는 계속 늘어나고 목과 어깨에도 통증이 이어졌죠.

 

다른 선수에 비해 부상 정도가 높은 만큼 노력도 더 많이 필요했습니다. 비장애인 파트너와 회전 동작을 완성하는 데에도 손 힘만으로 중심을 잡기 위해 더 많은 시간을 들여야 했고, 중심을 못 잡고 옆으로 넘어지는 날도 많았습니다. 채수민 댄서는 힘든 만큼 휠체어 위에서 자세를 바르게 펴고 중심을 잡는 일에 노력을 기울여 지금은 춤을 즐길 수 있는 상태로 접어들었다고 즐거운 표정으로 말합니다.

 

 

 

춤이 주는 ‘용기’ 그리고 ‘설렘’

 

 

이렇게 자신의 모습 그대로를 받아들이고 최선을 다해 꿈에 다가가려 노력한 채수민 댄서에게 힘겨운 시간이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재활병원에서도 웃음 소리로 유명했을 만큼 밝고 긍정적이었지만 때로는 자신의 상황에 대해 우울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춤을 다시 출 수 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도 안도감 뒤에는 불안함과 두려움이 찾아왔습니다.

 

하지만 채수민 댄서를 불안과 우울 속에서 꺼내준 것은 또다시 춤이었습니다. 휠체어 댄서로 처음 대회에 나가고 춤을 배워나가던 1년 동안 정신없이 몸을 움직이면서 춤에 대한 설렘만을 가지고 몰두하기 시작했습니다. 걱정보다는 응원과 지지를 보내준 부모님도 새로운 도전에 지치지 않을 수 있었던 힘이 되었습니다.

 

 

“저를 보여주다 보면 하고 싶은 게 더 많이 생기고, 그걸 또 하게 되면 용기가 다시 생기더라고요. 이런 과정들이 기분이 좋아요.”

 

채수민 댄서는 ‘장애인 댄스스포츠 선수’ 라는 인생의 전환점을 걷고 있습니다. 또 자신이 얻은 용기를 다른 사람에게도 전해주고 싶다고 말했는데요, 공연이나 인터뷰 요청을 흔쾌히 승낙하는 이유도 더 많은 장애인들이 하고 싶은 일을 실현할 수 있는 용기를 전달하고 싶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채수민 댄서는 내년 댄스 스포츠 국가대표 선발을 목표로 올해 선발전에 최선을 다해 임하고 있습니다. 동시에 학사 졸업 후 대학원에도 진학하고 장애인 스포츠 지도사 자격증을 취득해 다른 사람에게 도움과 용기를 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목표에도 차츰 다가가고 있죠. 채수민 댄서의 삶은 장애의 유무와 상관없이 스스로 즐겁다고 느낀 ‘춤’에 대해 끊임없이 도전하고 노력의 결실을 이뤄내는 순간의 연속이었습니다. 장애를 극복해야 할 대상이 아닌 삶의 한 부분으로 인정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나 자신을 그대로 사랑할 줄 아는 댄서’로 기억되고 싶다는 채수민 댄서에게 미디어SK도 응원과 지지의 박수를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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