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가 손에 쥔 낭창한 붓 한 자루. 순백의 종이 위에 촉촉하니 먹물 스민 붓끝이 닿는 순간, 세상의 모든 단어는 비로소 제 의미를 찾습니다. 생활서예가이자 캘리그라피 아티스트인 최루시아 님. 글씨로 소망과 기쁨을 전하는 그녀의 이야기를 들어 봅니다.
통통 튀는 감각파… 파격의 서예에 도전하다
붓 한 자루 손에 쥐고 세상으로 나아가다
이십 대의 젊은 나이에 서예학원을 운영하고 서각과 전통 국한문 서예를 수련하며 전시회도 여러 번 열었습니다. 우연한 제안으로 영화 ‘스캔들’에서 여주인공이 붓글씨 쓰는 장면에 대역 촬영을 하기도 했어요. 그런 가운데 이런 생각이 들더군요. 벽에 걸린 네모난 족자 안에, 혹은 서예실 안에 갇혀 ‘소수의 문화’로 자리 잡은 서예에 날개를 달아 주고 싶다는 생각 말이죠.
사람들 안에 자연스레 어우러져 같이 즐기고 가까이할 수 있어야 참된 ‘예술’이 아닐까 싶더군요. 사람은 누구나 세상과 소통하는 자신만의 방법을 갖고 있다고 생각해요. 어떤 사람에겐 그게 기술일 테고 다른 사람에겐 노래일 수도 있겠죠? 저에겐 그게 서예였어요.
사람을 향한 쉬지 않는 붓놀림
저는 홍대 앞 예술시장 프리마켓에서 제가 직접 디자인한 문구류와 아트소품에 캘리그라피를 더하는 작업을 합니다. 더불어 여러 공공미술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고요. 기업체 강연도 나가고 국제도서전에서 붓글씨 퍼포먼스를 하기도 했습니다.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3년째 한글서예 워크숍을 진행하고, 곧 대만에서도 워크숍과 강의를 합니다. 캘리그라피 아티스트로 다양한 상업매체에 제 글씨를 선보이며 저의 글씨와 그림으로 재능기부도 하고 있죠. 한글서예에 관심이 있는 외국인을 위한 클래스도 운영하고 있습니다.
가끔은 ‘몸이 열 개라도 모자라겠다’, ‘전통서예가가 너무 ‘외도’에 치우치는 것 아니냐’고 걱정하는 이야기를 듣기도 해요. 그렇지만 저의 예술이 ‘사람’을 향해 나아가야 한다는 생각엔 변함이 없습니다. 저의 붓 한 자루가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아내고, 새로운 문화에 눈뜨게 하는 도구가 되며, 따스한 감동과 정을 전하는 매개체가 된다는 걸 저는 믿어요.
한 자 한 자 감동과 소망을 전할 수 있기를
언젠가 제게 글씨를 부탁한 젊은 여성이 있었어요. ‘무얼 써 드릴까요’ 묻자, 그녀의 눈시울이 발갛게 달아오르더군요. 잠시 후 감정을 추스른 그녀가 부탁한 것은 편찮으신 아버지를 위한 응원 메시지였어요. 그때의 진한 감동을 항상 떠올립니다. 어쩌면 그저 글씨일 뿐이지만, 제가 그 안에 담는 것은 세상에 둘도 없는 특별한 감정이며 소중한 희망이라는 사실을 기억하려고 합니다. 제가 그것을 잊지 않는 한 제 글씨는 언제나 사람들 곁에 살아 숨 쉴 것이라는 사실도요.
세상을 자유롭게 헤엄치며 살아 숨 쉬는 글씨를 쓰고 싶어요.
서예를 시작한 지 20년이 훌쩍 넘은 지금도 최루시아 님은 하얀 종이를 마주하면 여전히 설렌다고 합니다. 그녀의 붓에 촉촉이 젖어든 것이 단지 먹물만은 아닐 터, 꿈과 희망을 붓끝에 찍어 글씨에 담아내는 최루시아 님은 매일매일 새로운 행복을 쓰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