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인문학] 본디 냉면은 겨울이 제맛이지만…

평양냉면, 해주냉면 다음으로 서울냉면을 손꼽을 만큼 이제는 서울냉면이 냉면 축에서 뻐젓하게 한몫을 보게 됐습니다. 그러나 서울냉면은 말하자면 평양냉면의 연장에 지나지 않습니다. 까다로운 서울 사람들의 미각을 정복하고자 평양냉면을 팔던 상인들이 일류 기술자를 데리고 경성으로 진출하기 시작해 이제는 굳은 지반을 쌓아놓았습니다. 여름 한 철 더군다나 각 관청의 점심시간이면은 냉면집 전화통에서는 불이 날 지경입니다.

1936년 7월 23일 자 <매일신보>에 실린 ‘냉면’ 기사다.
 
 

백설 흩날리는 겨울날의 별미

 
냉면 630
본래 냉면은 겨울에 먹는 음식이었다. 앞의 <매일신보> 냉면 기사의 마지막에서도 이 점을 놓치지 않는다.
 
“여름철 냉면은 시원한 맛에 많이들 먹지만은 정말 냉면다운 냉면을 맛 보려면은 겨울냉면이 제일입니다. 시원한 동치미 국물에 만 동치미 냉면이야말로 한 번 먹으면 인이 배이고마는 기가 막힌 음식입니다. 추운 겨울날 찬 냉면 맛도 별맛이려니와 구수하고 따뜻한 국수 물맛 또한 각별한 것입니다.”
 
평안도 출신으로 프랑스 유학을 다녀온 이정섭(李晶燮)은 자신이 외국에 있을 때 가장 많이 생각난 음식으로 김치와 갈비구이, 그리고 냉면을 꼽았다.
“동지섣달 백설이 펄펄 흩날리면 온돌에다 불을 따뜻하게 때고 3~4명의 우인(友人)이 서로 앉아서 갈비 구어 먹는 것이라든지 냉면 추렴을 하는 것도 퍽 그리웠다(<별건곤> 1928월 5월 1일 자).
 
눈 내리는 바깥 풍경과 지글지글 끓을 정도로 뜨거운 방 안 온돌, 그리고 그곳에서 이 시린 냉면을 먹는 모습이 눈에 선하다.
 사실 냉면이 ‘차가운 국수’가 되려면 얼음이 필요하다. 조선시대 왕실에서도 겨울에 꽝꽝 언 한강에서 얼음을 떼서 동빙고와 서빙고에 저장해두고 먹었다. 하지만 음력 5월 5일 단오 때가 되면 이곳의 얼음들도 자취를 감추기 시작했다. 오죽하면 임금이 마지막 남은 얼음을 총애하는 신하들에게 나누어 주는 행사를 열었을까?
 
 

얼음 동동~ 여름 냉면의 탄생 비화

 
 
1910년대가 되면서 사람들은 여름에 냉면을 찾기 시작했다. 냉면의 변신에는 근대적 제빙 기술과 겨울에 캐낸 얼음을 여름까지 보관하는 냉장 시설의 탄생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대한제국 탁지부는 1909년 부산항에 제빙 공장을 세웠다. 하지만 운영비가 없어 일본인 수산회사에 넘어갔고 그들은 제물포와 원산, 군산 등지에도 제빙 공장을 세웠다. 본래 이들 제빙 공장은 생선에 얼음을 채워서 오랫동안 유통하는 데 필요한 시설이었는데 그 값이 만만치가 않았다. 그러자 오래된 채빙(採氷) 방식이 냉장 시설과 연결됐다. 겨울에 한강과 저수지 등이 얼면 그것을 캐어 보관하는 공장이 들어선 것이다. 전기가 충분치 않던 당시의 제빙 공장도 겨울에 캐낸 얼음을 보관하는 방식으로 운영됐다.
 
1913년 4월, 기차 안에서 시원한 음료를 제공하기 위해 일본인이 용산 제1철로 근처에 제빙 공장을 세웠다(<매일신보> 1913년 4월 6 일 자). 이렇게 되자 1910년 중반 이후 여름이면 경성에는 어김없이 빙수점(氷水店)이 상설 점포나 포장마차 형태로 길거리에 자리 잡기 시작했다. 물론 냉면집 인기도 대단했다.
 
얼음장수
 

여름 냉면 먹을까? 겨울 냉면 먹을까?

 
 
실제로 1920년대 말, 서울 청계천 북쪽에는 40여 곳이 넘는 냉면집이 있었는데 여느 음식점과 다른 모습이 있었다. 냉면집에서는 간판 옆에 긴 막대기를 하늘 높이 꽂아두고 그 끝에는 길게 늘어 뜨린 종이 다발이 흩날리도록 했다. 종이 다발이 바람에 흔들리는 모습이 마치 제면기의 구멍에서 막 빠져 나오는 메밀국수 타래를 닮았다. 그때만 해도 종로엔 높은 건물이 별로 없어 전차에서 내려 북악산쪽을 올려다만 봐도 이 종이 다발이 금세 눈에 띄었다. 한여름의 뙤약볕 아래 종이 다발 휘날리는 모습을 보기만 해도 서울사람들은 냉면 생각에 앞뒤 가리지 않고 걸음을 냉면집으로 향했다. 이것도 여름 냉면 탄생의 비밀이다.
 
그래도 냉면 맛은 한겨울에 맛봐야 제격이다. 다산 정약용(丁若鏞, 1762~1836) 선생도 한겨울 황해도에서 맛본 냉면 맛을 잊지 못해 다음과 같은 시를 읊조렸다.

시월 들어 서관(西關)에 한 자 되게 눈 쌓이면 문에 이중으로 휘장을 치고 폭신한 담요를 바닥에 깔아 손님을 잡아두고는 갓 모양의 쟁개비에 노루고기 저며 굽고, 길게 뽑은 냉면에 배추절임을 곁들이네.

냉면이 여름 음식이라는 고정관념은 잊어라. 겨울 냉면을 맛볼 올 겨울이 벌써 기다려진다.
 

글 / 주영하 교수
한국의 대표적인 음식인문학자로,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대학원 민속학 전공 교수다. 《음식전쟁 문화전쟁》 《차폰 잔폰 짬뽕》 《식탁 위의 한국사》 등의 저서가 있다.

 
* 윗 글은 《사보 SK》 2012년 6월호에서 발췌하였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SK그룹 홈페이지 《사보 SK》를 통해 보실 수 있습니다.
 

맛있는 Tip. 고향이 남쪽이라지… 남부지방에서 탄생한 냉면 삼총사
 
평양냉면, 함흥냉면, 해주냉면…. 이들의 공통점은 고향이 이북이라는 사실! 남쪽에서 탄생해 우리 입맛을 사로잡은 냉면들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
 
남쪽냉면 삼총사
진주냉면
 
경상남도 진주의 양반가의 특식 또는 기방의 야식으로 사랑받던 ‘진주냉면’. 북한에서 출간된 <조선의 민속전통>이 “냉면 가운데서 제일로 일러주는 것이 평양랭면과 진주랭면이었다”고 적을 만큼 명성이 자자했다. 지리산 인근의 풍부한 밀가루와 메밀로 만든 면해물 육수는 별미다. 쇠고기 육전을 넉넉히 얹은 고명이 특징.
 
부산밀면
1950년대 부산에서 탄생‘밀면’. 한국 전쟁 당시 이북에서 부산으로 내려온 피난민들이 생계를 위해 고향음식인 냉면 장사를 많이 했는데, 전쟁통에 구하기 힘든 감자나 메밀 대신 미군 원조로 구하기 쉬웠던 밀가루에 전분을 섞어 만든 면발이 특징이다. 면발, 육수 고명, 양념장은 평양냉면과 함흥냉면의 장점을 취사선택한 결과라고.
 
남원칡냉면
지리산에서 태어나 전라북도 남원의 향토음식이 된 ‘칡냉면’. 탄생 시기는 명확하지 않으나 지리산의 관광객이 늘면서 자연스럽게 전국적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산내, 함양, 마천 등 지리산 인근에서 채취한 칡의 전분과 밀가루를 이용해 만든 검은 면발이 특징이다. 칡의 독특한 향을 즐길 수 있는 별미 음식.

 

페이스북 트위터 카카오스토리 더보기
밴드 url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