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느질하는 남자, 김영권의 행복은 가죽가방이다

행복피플 김영권의 행복은 가죽가방이다
서촌 골목의 이름 모를 작은 공방. 앨리스의 토끼 구멍 같은 공간에 들어서면 한 남자가 앉아 바느질을 하고 있습니다. 벽에 걸린 그림 같은 가방들이 남자의 손을 구경하고, 작업대에는 온갖 기구들이 누워 나른하게 볕을 쬐고 있습니다. 핸드메이드 가죽 공방을 운영하는 김영권 님의 작업실 풍경입니다.
 
 


 
 

바늘 쥔 남자의 재미난 청춘

 
 
이게 저의 3번째 직업이에요. 나이는 올해 마흔입니다. 하하. 학창시절 전망 좋다는 방사선과를 나와 취업했는데, 재미가 없더라고요. 스물아홉 무렵 동대문에 가서 청바지 만드는 일을 새로 배웠죠. 당시 자주 보던 패션잡지에서 ‘가죽 공방’ 기사를 읽었고, 훗날 그곳을 찾아가 다시 가방 만드는 일을 배우기 시작했어요. 뭔가 안정적인 삶을 살아야 할 나이에 저는 언제나 도전을 시작하니까 주변에서 말리기도 했죠. 하지만 일이 정말 재밌어 푹 빠지곤 했어요.
 
작업 중인 김영권 님
장인들을 찾아다녔죠. 그렇게 가방을 만든지 올해로 4년 되었어요. 제가 정말 바느질을 좋아하거든요. 오로지 주문한 분만 생각하며 한 땀 한 땀 완성해가는 과정이 재밌어요. 에너지를 모두 담아 집중하는 그 시간이 정말 좋습니다.
 
 

사람 피부처럼 숨 쉬는 가죽

 
 
가죽의 매력은 아무래도 사람과 똑 닮았다는 거죠. 사람 피부처럼 여름이면 모공이 열리고 겨울이면 수축해요. 또 같이 나이 들어가며, 세월의 흔적과 주인의 손때가 묻을수록 멋있어집니다. 가죽가방을 보면 주인의 성격이나 습관도 짐작되죠.
 
작업 중인 김영권 님
무엇보다 제가 가장 좋아하는 가죽은 ‘베지터블 가죽’이에요. 꽃이나 나무에서 추출한 식물 염료로 염색한 가죽인데요. 화학 염료로 염색한 다른 가죽과 달리 은근한 멋이 있거든요. 더구나 사람이 일일이 색 입혀 무두질한 것이라 태닝도 잘 되고요. 가죽도 사람처럼 햇볕에서 잘 그을려야 색이 예뻐요. 관리를 잘해줘야 합니다.
 
 

‘일주일’ 세계가 창조되는 시간

 
 
가죽가방 만드는 작업은 보기보다 힘이 많이 들어요. 주문자와의 ‘상담’부터 시작해서 단계만 여럿인데, 모든 과정을 매우 꼼꼼하게 잘 해야 하거든요. 도구도 많이 필요하죠. 가죽을 자를 땐 1~2mm만 어긋나도 모양이 안 잡힙니다. 가죽 자른 단면을 칠하는 걸 ‘약칠’이라 하는데, 바르고 말리는 과정을 3번 이상 하기도 해요. 이 과정만 이틀이 걸리죠.
 
김영권 님의 작업대
가방은 ‘새들 스티치’ 방식으로 바느질하는데요. 왼손과 오른손을 동시에 사용하는 방법입니다. 재봉틀이 없던 옛날, 격렬한 마찰이 있는 승마용 안장을 만들 때 개발된 방식이에요. 별개의 실이 두 개씩 엮인 거라 굉장히 튼튼해요. 이렇게 가방 하나에만 오로지 매달리면, 일주일 정도에 완성할 수 있죠. 다 만들고 나면 판매하기 싫을 정도로 정이 듭니다.
 
 

꿈을 키워가는 ‘간판 없는 가게’

 
 
우리 가게에는 간판이 없어요. 손님들이 희한해하죠. 그런데 ‘원더메이드’라는 제 공방의 문을 열던 무렵, 간판보다는 이 공방의 색과 이야기를 보여드리고 싶었어요. 직접 손으로 쓴 명함을 드리고, 손님들과 좋은 관계를 맺는 것. 좋은 만듦새를 통해 신뢰를 쌓는 게 간판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했죠. 아직 우리 사회에서는 우리나라에서 만든 가방을 제대루 인정하지 않는 분위기가 있어요. 일단 외국에서 먼저 인정을 받고 들어와야 ‘아!’ 합니다. 아직 이 분야의 문화가 넓지도, 성숙하지도 않았다는 겁니다. 하지만 저는 앞으로도 이 일을 계속하며, 문화를 넓혀가고 싶다는 바람이 있습니다.
 
김영권 님의 가죽 공방

오래 간직할 수 있는 물건 하나가 평범한 삶에 빛을 더한다고 믿어요.

 


 
 
진심으로 마음을 빼앗긴 일이라도 선택의 순간에는 고민이 따르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김영권 님은 ‘고민’이란 단어를 사용하지 않습니다. 그 비결을 물었더니 ‘인생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다’라는 자신의 좌우명을 들려줍니다. 다들 빨리 무언가가 되고, 빨리 무언가를 이루려는 요즘. 김영권 님처럼 묵묵히 자신이 좋아하는 일에서 행복을 찾는 이와의 만남이 즐거운 이유입니다. 속도와 방향…. 지금 여러분은 어디에서 행복을 찾고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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