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가리아 음식 대사관을 꿈꾸는 형제 셰프, 필립과 미카엘 셰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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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TV를 주름잡는 쿡방에 유독 눈에 띠는 외국인 셰프가 있다. 바로 불가리아에서 온 셰프, 미카엘이다. 훤칠한 외모에 현란한 요리솜씨까지 빠지는 것이 없는 미카엘에게는 그와 비슷한 형이 있다. 바로 필립. 인터뷰를 시작하며 나이를 묻자 그들은 본인들을 81년생 83년생, 돼지띠 닭띠로 소개를 했다. 한국 생활 9년(필립), 12년(미카엘)차로 반한국인이 되어버린 형제. 불가리아를 더욱 긍정적으로 알리기 위해 늘 분주히 움직이는 그들을 만나본다!
 
 

‘된장찌개’와 ‘잡채’, 최고의 한국 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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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시절의 필립&미카엘 가족 >

저희가 제일 좋아하는 한국 음식은 된장찌개와 잡채에요.

그들의 나이를 감안하면, 그들은 이미 한국에서 꽤 긴 시간을 보냈다. 아직은 서툴지만 한국어도 곧 잘 하는 미카엘과 필립. 불가리아 음식을 전파하기 위해 불가리아 정통 요리를 고수하는 그들이지만 입맛은 영락없는 한국인이다.
 
얼마 전까지 전국의 맛집을 찾아 다니는 프로그램에서 활약을 했던 미카엘은 특히 형 필립보다 더 많은 한국음식을 접할 수 있었다. 전국을 다니며 한국 음식을 접하면서 가장 놀라웠던 것이 불가리아 음식과 비슷한 점이 상당히 많다는 점이었다고 한다. 상당히 멀리 떨어져있는 두 나라임에도 불구하고 소머리탕이나 내장탕과 같은 요리들은 불가리아 음식과 맛이나 조리법이 같은 음식이라고 할 정도로 비슷하다고 한다. 그 맛이 비슷해서일까? 최근 라디오 프로그램에 나와서도 내장탕과 같은 불가리아 음식과 비슷한 한국음식을 적극 추천하고 있다.

소머리탕, 내장탕 뿐만 아니라 심지어 김치찌개도 불가리아에 있어요. 양배추로 만든 김치에 돼지고기 목살을 함께 삶아내는 요리인데 김치찌개와 굉장히 비슷하거든요. 지금 저희 레스토랑을 찾으시는 분들의 대부분이 한국 분들이신데 비슷하기 때문에 입맛에 맞아서 더 많이 찾아주시는 것 같아요.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서 고수한, 정통 불가리아의 맛

 
 
처음 인터뷰를 위해 이태원에 위치한 그들의 레스토랑을 찾았을 때, 마치 ‘여행’을 온 듯한 느낌을 받았다. 대부분의 직원이 외국인이었고 인테리어도 한국에서는 볼 수 없는 것들이었다. 처음 그들이 ‘젤렌’ 레스토랑을 시작했을 때 손님이 거의 없었다고 한다. 그래서 1년간은 굉장히 힘들었다고. 한국 손님은 거의 없고 외국 손님만 드문드문 그들의 음식을 찾았다. 소위 말해서 레스토랑이 ‘망할 위기’에 처한 것이다. 주변에서는 그들에게 조언을 해주었다고 한다. ‘불가리아식’을 버리고 ‘한국식’으로 한국인의 입맛에 맞는 불가리아 음식으로 바꾸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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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들은 타국에서 레스토랑을 한다고 해서 타국에 맞는 음식을 만들어내기 보다 정통 불가리아식을 고수해 불가리아 음식을 널리 알리고 싶었다. 그 나라 사람들의 입맛에 맞는 음식을 내면 당장에 장사가 잘 될지는 모르지만, 결국 그 음식은 한국 음식도 아니고 불가리아 음식도 아닌 음식이 되어 버리기 때문이다. 비록 힘든 시기를 보냈지만 조금씩 입소문을 타기 시작하면서 그들의 레스토랑에도 한국인들이 많이 찾기 시작했다.

지금은 한국 사람들이 훨씬 많아요. 물론 저희가 TV프로그램에 출연하면서 많은 분들이 알아보고 찾아와 주신 덕분도 있어요. 하지만 그런 활동 때문에 이 모든 게 이루어졌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저희가 불가리아 음식을 만들어서 타국에 전파하는 것에 굉장히 큰 자부심을 느끼고 행복해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 진심이 한국인들에게 전달된 것 같아요.

조리법을 한국식으로 전혀 바꾸지 않고도 이루어낸 코리안 드림. 자국에 대한 애정과 자부심으로 만들어낸 요리였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 아니었을까? 그래서 최근에는 더 많은 불가리아를 소개하기 위해 불가리아에서만 먹을 수 있었던 와인도 직접 수입해 더욱 완벽한 식탁을 꾸리고자 하는 의지를 엿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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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 레스토랑에는 김치, 단무지, 피클 이런 것도 없어요. 사실 달라고 하시는 분들이 많이 있는데 불가리아에 없는 음식은 드리지 않아요. 대신 불가리아 사람들이 먹는 것처럼 샐러드나 요구르트를 추천해드리죠. 가구나 소품, 그리고 식기에 이르기까지 모두 불가리아에서 공수해 온 made in 불가리아에요. 서울 그리고 이태원 안에 작은 불가리아를 만들어 놓은 것이죠.

불가리아 음식 대사관을 꿈꾸는 형제 셰프

 

지난 5월, 불가리아 로젠 플레브넬리에프 대통령과 함께

 
그들의 레스토랑에는 세 명의 불가리아 대통령이 다녀갔는데, 그 중에는 얼마 전 다녀간 현직 불가리아 대통령, 로젠 플레브넬리에프 대통령도 포함되어 있다. 로젠 플레브넬리에프 대통령은 한국과 불가리아의 수교 25주년을 기념해 방한하였는데, 그들의 레스토랑을 찾은 것이다. 국내에서는 유일한 불가리아 정통 레스토랑이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다. 떨리는 마음으로 대통령에게 식사를 대접한 뒤, 지켜보던 그들에게 로젠 플레브넬리에프 대통령은 먼저 말을 걸며 함께 앉아서 대화를 나누자고 청했다. 그리고 4시간여 동안 불가리아 이야기, 한국 이야기 등을 나누며 정말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고 한다.

 
이렇게 이어진 로젠 대통령과의 인연은 그들에게 뜻하지 않은 기회를 선사했다. 다음날 예정이었던 청와대 만찬에 필립과 미카엘 셰프가 초청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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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카엘과 필립이 청와대에 초청받아 대접받은 식사 / <사진출처 : 미카엘 셰프 인스타그램>

정말 가문의 영광이죠. 저희 나라 대통령님께서 저희 레스토랑을 찾아주신 것도 행복하고 감사한데 긴 시간 저희와 대화를 나눠주시고 거기에 청와대 만찬에까지 불러주시다니. 원래는 80명만 초청 된 자리였는데 저희 때문에 2명이 추가됐어요. (웃음) 그 날 정갈하게 한정식이 나왔는데 된장찌개나 김치찌개가 나왔으면 훨씬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신선로는 저희 입맛엔 조금 아니더라고요.(웃음) 그래도 다 맛있고 좋았어요. 또 그런 기회가 오면 정말 더 좋을 것 같아요. 그런 일들을 겪고 나니 정말 불가리아인으로서 긍지도 다져지고 더욱 열심히 불가리아 음식을 만들고 전파하면서 국위선양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불가리아 음식 대사관으로서 말이죠.

가족이 함께하는 한국에서의 행복라이프를 꿈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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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좌)어머니와 미카엘, (우)아버지와 미카엘 >

 
지금 한국에는 필립과 미카엘의 가족 그리고 그들의 아버지가 함께 살고 있다. 12년 전, 불가리아에서 처음 스카우트 제의를 받아 먼 나라로 건너온 미카엘이 조금씩 자리를 잡으며 자신의 레스토랑을 오픈하면서 필립 셰프와 그의 가족이 나중에 한국으로 왔고 그 뒤를 따라 그들의 아버지도 한국으로 왔다. 하지만, 아직 어머니께서는 고향인 폴란드에 계신다. 한국에 5번 정도 다녀 가시긴 했지만 잠시 들리실 뿐 아직 함께 살지는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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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정말 행복한 추억이 많아요. 한국 사람들도 정말 친절하고 좋고요. TV프로그램에서 불가리아를 마음껏 홍보할 수 있는 것도 행복하고 저희로 인해서 한국 사람들이 불가리아를 긍정적으로 봐주는 것도 참 좋아요. 저희가 더 잘해야 할 이유가 생기는 것이죠. 이제 마지막 행복의 퍼즐을 맞출 때가 온 것 같아요. 가족이 다 함께 사는 것 말이죠. 어머니도 곧 모시고 올 거에요. 그럼 온 가족이 다 함께 살면서 더욱 큰 행복을 느낄 수 있지 않을까요? 얼른 그 날이 오길 바래요. 저희 모두.

 
머나먼 타국에서의 생활이 녹록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한국에서 한국식이 아닌 불가리아식으로 정면 승부를 하며 자국을 알리는데 큰 역할을 했다. 쿡방을 점령한 불가리아 셰프, 필립과 미카엘 덕분에 많은 사람들이 불가리아 하면 그들을 떠올리고 그들을 떠올리면 자동으로 불가리아를 떠올린다. 이런 것이 바로 진정한 애국자의 모습이 아닐까?
 
타국에 있는 한국인들 중에서도 이들처럼 한국을 더욱 한국적으로 알리기 위해 애쓰는 분들이 많다. 그리고 그 일이 곧 자신들의 행복이라 여긴다. 자국을 사랑하는 그 애정 하나로도 많은 이들에게 행복을 전하고 나라를 알릴 수 있다는 것을 몸소 보여준 필립과 미카엘. 한국과 불가리아의 수교가 25주년을 맞이한 것처럼 더욱 오래오래 한국에 머물며 더불어 살아갈 수 있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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