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쌀쌀해지고 곡물이 익어가는 가을에는 전통주가 유난히 생각납니다. 요즘 전통주를 바, 카페 등 새로운 분위기의 공간에서 다양하게 맛볼 수 있는 곳을 찾는 사람들이 늘고 있는데요. 조선시대부터 명주로 꼽히는 증류주부터 천연 발효한 갖가지 막걸리까지, 전통주를 특별하게 즐길 수 있는 근사한 공간, 네 곳을 소개합니다.
모던한 전통주 바, 작(酌)
역삼역 4번 출구 근방에 자리한 ‘작’은 국내 최초로 전통주 ‘바’를 표방합니다. 곧 오픈 1주년을 앞둔 공간은 ‘전통주 바’라는 소개에 걸맞은 세련된 분위기를 갖췄는데요. 위스키 바를 떠올리게 하는 길다란 바와 진열장, 분위기 있는 조명과 유리 잔까지, 새로운 공간에서 전통주를 즐기는 재미가 있습니다.
전통주와 사랑에 빠진 후 회사를 그만두고 ‘작’을 차렸다는 강병구 대표는 전통주 중에서도 ‘바’의 콘셉트에 보다 어울리는 도수 높은 증류주를 선호합니다. 잔술로 판매하기에도 좋은 문경바람, 진도홍주, 죽력고, 이강주 등 30여 가지의 증류주를 칵테일잔과 리큐어잔으로 즐길 수 있지요. 두견주, 탁주도 구비해두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전통주도 양조장에 따라 맛과 향이 조금씩 다른 것에 착안해 샘플러 메뉴도 준비했습니다. 각기 다른 양조장에서 빚은 안동소주를 마실 수 있죠.
낯선 전통주 병을 살피면서 우리 문화를 알아가는 재미도 있습니다. 조정형 명인의 약소주 이강주처럼, 조선시대 3대 명주는 무엇이었는지, 어떤 술이 우리의 무형문화재에 속하는지 등 병을 읽다 보면 자연스레 알 수 있습니다. 가을밤에는 문경오미자 와인을 두번 증류한 후 오크통에 숙성시킨 술, 고운달 오크를 맛보는 것도 좋겠네요.
INFO.
주소 서울시 강남구 논현로95길 14
문의 02-501-2342
200여 종의 술을 보유한, 백곰막걸리&양조장
전통술 주점에서 서로를 만난 이후, 전국 400여군데 양조장을 다니며 데이트를 했던 두 사람. ‘백곰’이라는 애칭으로 불리는 이승훈 대표와 유이진 부부가 차린 백곰막걸리&양조장은 단독주택을 개조해 탄생한 공간입니다. 거실의 서재가 있을법한 자리에 놓인 원목 진열장에는 책 대신에 전국 각지에서 온 막걸리가 가지런히 꽂혀있죠.
지하 1층, 지상 2층 규모의 ‘백곰막걸리&양조장’이 구비하고 있는 술은 200여 종류. 어떤 술을 마실지, 어떤 술과 음식이 어울릴지 행복한 고민을 하기에 충분합니다. 선택이 막막하게 느껴진다면 직원에게 묻거나, 매월 공개하는 인기 술 순위를 참고해도 좋고요. 담백하고 달지 않아 여러 안주와 잘 어울리는 해남 해창막걸리, 단풍나무 우물이라는 운치있는 의미를 담은 청주의 약주, 풍정사계가 최근 가장 사랑 받는 술이랍니다.
‘백곰막걸리&양조장’은 <수요미식회>에 막걸리 맛집으로 출연하기도 했는데요. 방송에 나왔던 가오리찜과 돼지고기 수육 외에도 벌교에서 온 피꼬막무침, 속초 오징어김치전 등 술과 어울리는 음식들이 가득하니 친구들과 함께, 가을 주말 테라스에 앉아 잔을 부딪히면 어떨까요?
INFO.
주소 서울시 강남구 압구정로48길 39
문의 02-540-7644
태국 음식과 전통주의 마리아주, 얀
얌운센과 똠얌꿍, 그리고 팟타이를 전통주와 즐길 수 있다면? 태국어로 ‘이웃’을 의미하는 얀은 서래마을에 자리한 아담한 태국요리 전문점입니다. 태국의 황실 레스토랑 ‘블루 엘리펀트’를 비롯 세계 각지에서 요리 경력을 쌓은 황인수 오너 셰프의 태국 요리와 전통주 소믈리에가 엄선한 우리 술을 맛볼 수 있죠. 계절이 바뀔 때마다 새로운 태국 음식을 선보일 정도로 현지 요리에 대한 자부심이 넘치는 곳이기도 합니다.
주류 리스트를 펼친 순간 ‘얀’의 매력은 두 배가 됩니다. 태국 맥주와 와인은 기본, 전통주 소믈리에가 정성껏 고른 우리술과 전통주 칵테일이 메뉴판을 차지하고 있거든요. 사과증류주인 문경바람을 이용한 모히또, 솔향이 은은한 전통주 담솔을 베이스로 태국 허브를 곁들인 칵테일은 향이 강하고 새콤하고 매콤한 태국 음식과 잘 어울릴 것 같은데요. 매실원주나 오메기술 같은 달콤한 술부터 문배술, 우포의 아침 등 전통주 리스트도 훌륭합니다.
특히 메뉴 하나하나를 친절하게 설명한 메뉴판은 음식과 페어링에 대한 ‘얀’의 애정과 각오를 엿볼 수 있는 대목입니다. 전통주와 현지 태국 요리의 특별한 마리아주를 즐기고 싶다면 방문해보세요.
INFO.
주소 서울시 서초구 사평대로26길
문의 070-8863-2016
소박한 공간에서 전통주를 즐기는, 술그리다
노란색 벽과 붉은색 차양, 언뜻 보면 카페같기도 한 ‘술그리다’는 지난해 문을 연 이후 마니아들 사이에서 꾸준히 사랑을 받고 있는 공간입니다. 실제로 낮에는 차와 커피를 파는 카페이기도 하지만 가까이 다가가면 밖에서도 볼 수 있는 쇼케이스에 잔뜩 진열된 술병을 볼 수 있죠. 워낙 술에 관심이 많은 부부가 운영하는 만큼 전통주 외에도 세계 맥주도 다양하게 구비되어 있는데요.
이 작은 공간이 사랑 받는 이유 중 하나는 바로 전통주 시음이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연간 생산량이 1만병도 채 되지 않아 구하기 힘든 자선농원의 ‘휴동막걸리’를 비롯해 전국 곳곳의 양조장에서 가져온 막걸리와 전통주를 시음 후 구매할 수 있는데요. 집에서 혼술을 즐기는 사람이나, 선물할 술을 찾는 사람이라면 반가울 수 밖에 없겠죠.
물론 마시고 싶은 술을 오뎅탕, 라면, 치즈스틱과 감자튀김 같은 편안한 안주와 함께 자리에 앉아 맛볼 수도 있습니다. 편안한 분위기에서 전통주의 세계에 빠지고 싶은 이에게 권하고 싶은 공간입니다. 낮술도 환영이라고 하니 참고하세요.
INFO.
주소 서울시 마포구 회우정로35
문의 02-335-00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