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론] 당신의 선입관, 무죄인가 유죄인가

우리의 인간관계 속에서 선입관의 영향력은 꽤 큽니다. 처음 만나는 사람을 보고도 ‘곱슬머리에다 니인 걸 보니 고집깨나 세겠군.’ ‘혈액형이 B형이라고? 사귈지 말지 신중하게 생각해야지.’ 하며 마음속에 미리 선을 그어 버리는 것들이 그 예지요. 남의 말에 귀 잘 기울이기로 유명한 《삼국지》의 유비도 뒷날 책사로 이름을 떨친 방통을 처음에는 외모가 어리석고 둔해 보인다 하여 지방에 발령 냈을 정도니까요.

선입관은 어떤 대상에 대하여 이미 마음속에 가지고 있는 고정된 생각이나 관점입니다. ‘편견’이 공정하지 못하고 한쪽으로 치우친 생각이라는 점에서 둘은 다릅니다. 편견이 좋지 않은 생각이라면 선입관은 꼭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선입관은 그동안 내가 경험을 통하여 느끼고 배운 어떤 틀(가치관)이고, 뭔가를 판단하는 기준으로 삼을 만하기 때문입니다.

선입관 때문에 착시가 일어난다?

미국의 심리학자 브루너(J. S. Bruner)와 굿맨(C. C. Goodman)은 선입관이 어떻게 작용하는지 동전으로 실험해 보았습니다. 지적 수준이 평균인 열 살짜리 어린이 30명을 동그란 빛이 비치는 스크린 앞에 앉힙니다. 이 동그란 빛은 크기를 자유롭게 조절할 수 있습니다. 연구팀은 어린이들에게 1센트, 5센트, 10센트, 25센트, 50센트짜리 동전을 보여 주고 이 빛을 머릿속에 생각한 동전의 크기로 만들어 보라고 합니다.

선입관에 따라 다르게 보이는 사물의 크기

실험 결과 어린이들은 액면가가 높은 동전일수록 실제 크기보다 더 크게 표현했습니다. 화폐적 가치가 큰 동전일수록 더 크다고 생각한 것이지요. 이와 비슷한 실험을 가난한 그룹과 부유한 그룹으로 나누어 했더니 가난한 어린이들이 더 크게 그리는 경향을 보였습니다. 

이처럼 우리가 눈으로 보고 ‘저것은 무엇이다’라는 판단을 할 때는 각자의 가치관이 끼어듭니다. 어린이들이 똑같은 동전을 보았지만 동전 정보를 인식하는 과정에서 자기가 생각한 돈의 가치를 보태어 해석한 것처럼 말이지요. 이런 경향은 사람을 판단할 때도 나타납니다. 같은 사람을 한 학급에는 대학 교수라고 소개하고, 다른 학급에는 같은 학생 신분이라고 소개했더니 대학 교수로 소개받은 학급의 학생들이 그 사람의 키를 더 크게 보았다는 실험 보고가 있습니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좋은 게 좋은 마음

그렇다면 우리의 선입관은 겉모습을 판단할 때만 작용할까요?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평가하는 데는 또 어떤 선입관이 작용할까요? 사회심리학자 솔로몬 애쉬(Solomon Asch)는 가상의 인물을 설정하여 실험 참가자들에게 그의 성격을 묘사하는 형용사를 차례차례 읽어 준 뒤 실험 참가자들이 느끼는 인상을 적어 보게 했습니다. A그룹에는 긍정적인 내용의 형용사부터 부정적인 형용사의 차례로 읽어 주고 B그룹에는 반대로 부정적인 것부터 읽어 주었습니다.

그 결과, 긍정적인 형용사부터 들은 A그룹 사람들이 가상의 인물에 대해 훨씬 더 호의적이었습니다. 예를 들자면 ‘지적이다’라는 인물의 특성을 A그룹은 ‘조금 충동적이고 고집이 센 천재들의 그것’으로 해석한 반면 B그룹은 ‘교만함’으로 해석한 것입니다. 이는 먼저 접한 정보들이 실험 참가자들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우리는 위 실험 참가자들처럼 일단 누군가에 대한 틀을 만들어 버리면 나중에 새로운 정보가 추가되더라도 자기가 이미 만들어 놓은 상대방의 모습에 맞춰 나머지 정보들을 해석해 버립니다. 바로 선입관으로 사람을 판단하는 것이지요.

선입관은 무죄, 선입관에 휘둘린 당신은 유죄

우리가 애쉬의 실험에서 한 가지 더 주목할 만한 점은 어떤 선입관이 생기는지를 가르는 중요한 기준이 사람의 ‘긍정적인 면을 봤느냐 부정적인 면을 봤느냐’라는 점입니다. ‘고운 사람 미운 데 없고 미운 사람 고운 데 없다’라는 말처럼 한번 곱게 본 사람은 뭘 해도 예뻐 보이고, 한번 미운털이 박힌 사람은 뭘 해도 밉게 보입니다.

우리가 인간관계에서 선입관 때문에 괴로울 때는 사람을 밉게 볼 때일 겁니다. 그런데 선입관은 애초에 ‘당신, 미워할 거야.’라는 나쁜 의도를 갖고 생기는 게 아닙니다. 만약 미운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제대로 안다면 선입관은 사라질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누군가를 제대로 아는 게 그렇게 쉽나요? 그렇기 때문에 편리하게 각자 마음의 선입관을 따르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인간관계에 불편을 일으켰던 선입관에게는 이제 무죄 선고를 내려도 될 것 같습니다. 남은 것은 선입관을 잘 이용해 갈등을 줄이고 행복할 방법을 찾는 일이지요. 선입관의 노예였던 사람은 이제 자신의 고정관념이 무엇인지 똑바로 인지하고 남을 판단할 때 객관적인 근거를 찾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선입관의 피해자였던 사람은 애초에 자신이 남에게 긍정적인 면을 보여 주지 못한 것은 아닌지 되돌아볼 일입니다. 그렇게 중간 지점을 찾을 때 우리의 삶은 좀 더 공정하고 행복해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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