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찬용 전시 해설가가 알려주는
미술 전시 잘 보는 Tip



겨울이 가고 봄이 오면서 한결 풀린 날씨만큼 다양한 전시가 우리를 찾아오고 있습니다. 미술 전시장을 찾아 일상에 예술적 감성을 채우면 우리의 마음 속에도 알록달록한 봄이 찾아오는 것을 느낄 수 있죠.

그렇다면 미술 전시는 어떻게 고르고, 어떻게 관람해야 ‘잘’ 관람했다고 할 수 있을까요? 16년 경력의 김찬용 전시 해설가가 말하는 미술 전시 잘 보는 팁, 지금부터 같이 들어볼까요?




저는 올해 16년째 미술 전시를 해설하고 있는 전시 해설가 김찬용입니다.

전시 해설가는 전시를 보여주는 기획자와 작가, 전시를 관람하는 관람객 사이에서 중간자의 역할로 작품과 전시를 해설해주는 사람인데요, 기존에는 도슨트(Docent)라고 주로 불렸지만 국내에서는 도슨트의 뜻을 직관적으로 이해하기 쉽지 않아서 ‘전시 해설가’로 단어가 바뀌는 추세입니다.

여기에 더해, 저는 해설가이면서 동시에 미술이라는 전문분야를 관람객들에게 쉽게 전달하는 ‘변환자’라고도 생각합니다. 110개가 넘는 전시의 해설가로 참여하면서 나름의 의미가 담긴 각 전시들을 예술 가치를 훼손하지 않는 선에서 쉽게 변환해 관람객에게 전달하는 데에 주의를 기울였죠. 그 결과 많은 전시회에서, 또 많은 나라에서 저를 찾아주면서 더 많은 전시를 해설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 것 같습니다.



미술에 관심이 생기기 시작한 사람들이 전시를 관람할 때, 어떤 태도로 관람해야 할까요?



무엇이든지 시작은 거창하지 않아도 좋습니다. 미술을 어려운 개념으로 접근하기 보다, 새로운 취미를 경험하거나 특별한 시도를 해본다는 느낌으로 가볍게 시작하는 것도 나쁘지 않아요. 최근에는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촬영용 전시도 많아져서 가벼운 문화생활로 전시 관람에 도전해볼 수도 있습니다.

미술에 대해 아는 것이 없다면 산책하듯이 한 작품을 3초씩만 관람하는 것도 하나의 팁인데요, 미술 작품 속에 숨은 작가의 의도를 느껴야 할 것 같은 압박에서 벗어나서 전시장의 작품을 3초씩 응시하는 것입니다.

만화책에 비유해보겠습니다. 누구도 만화책을 읽으며 캐릭터가 말하는 말 한마디 한마디의 의도를 분석하며 집중하지는 않습니다. 처음에는 가볍게 책장을 넘기다 만화에 숨은 이야기와 메시지와 만나게 되죠. 미술에서도 작품을 하나씩 넘겨 읽다가 왠지 좀 더 끌리는 작품을 마주하게 되면 그 속에서 작가의 메시지를 만나고 내 취향을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좋은 전시를 잘 고르려면 어떤 전시를 선택해야 할까요?



보통 국립현대미술관이나 대기업이 운영하는 미술관처럼 자체적으로 전시를 기획하는 곳의 전시회는 일정한 퀄리티를 유지하는 편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조금 더 디테일하게 전시를 선택하고 싶다면 티켓 구매 사이트에 올라온 전시 소개를 살펴보는 방법도 있습니다. 유명 작가 이름의 헤드라인과 함께 나와있는 정보를 꼼꼼하게 살피면 좋은 전시를 구분할 수 있는데요. 메인 작품이 어떤 것인지, 유화는 몇 점이고 판화는 몇 점인지 등의 전시 정보가 구체적으로 나와있는 전시를 고르는 것을 추천합니다. 작가의 이름이나 전시의 컨셉만 대략적으로 적혀있는 전시에는 막상 원화는 거의 없다거나 아카이브 형태의 자료만 전시되어 있는 경우도 있어서 제대로 전시를 관람하기에는 좋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몇 번 전시를 관람하다 보면 미술의 취향이 생기고 좋아하는 작가가 생기게 되겠죠. 이후에는 비슷한 작가나 비슷한 화풍의 전시를 골라서 관람하시면 좋습니다. 여기에도 하나의 팁이 있는데요, 전시회 포스터 제일 아래에 있는 전시 기획사를 외워두는 것입니다. 전시를 주최하는 기획사를 기억해두면 다음 전시를 선택할 때 해당 기획사의 전시 위주로 확인해서 선택의 폭을 좁힐 수 있습니다. 반대로 내 취향과 맞지 않는 전시라면 주최한 기획사를 다음에는 피할 수도 있겠죠?



전시를 어떻게 봐야 효과적으로 작품을 감상할 수 있을까요?



전시를 관람하는 목적에 따라 관람하는 방법도 달라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미술을 통해 가볍게 위로받고 문화생활로 힐링받고 싶다면 캐주얼한 느낌의 전시를 즐겁게 관람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지만 일상에서 망각하고 있던 부분을 자극 받고, 새로운 영감을 얻기 위해서는 ‘사유의 시간’이 필요합니다.

유럽의 미술관에서 전시 해설을 하다 보면 유치원 아이들이 전시를 관람할 때가 있습니다. 난해한 전시인데도 어린 아이의 시각으로 작품을 바라보며 아이들의 눈에는 어떻게 보이는지 자유롭게 사유하죠. 어려운 전시일수록 새로운 영감에 가까이 다가가기 위해서는 이렇게 사유하는 순간들이 필요합니다. 이때 전시 해설가의 역할 또한, 작품의 의도와 작가의 메시지를 정답처럼 알려주는 것이 아닌 각자 진지하게 사유할 수 있는 순간을 열어주는 것입니다. 미술 전시를 통해 일상에서 놓쳤던 새로운 감각과 자극 속에서 헤매고 고민하는 것이 특별하게 전시를 관람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현대인에게 전시를 보거나, 작품을 감상하는 것은 어떤 의미를 가질까요?



우리는 요즘 ‘도파민의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스마트폰을 열면 끊임없이 재생되는 짧고 자극적인 영상들 속에서 즉각적으로 만족을 얻곤 합니다. 예술도 이 흐름 속에서 크게 두 가지 방향으로 가고 있는데요. 더 이상 유화물감으로 그리던 시대는 끝났고 AI나 메타버스와 같은 테크니컬한 기술들로 발전하는 방향성, 또 하나는 훨씬 더 인문학적이고 철학적으로 미술을 사유하는 방향성이죠.

그중 인문학과 철학을 추구하는 미술은 빠름을 강조하는 도파민의 시대에서 ‘느림의 미학’을 찾아 나섭니다. 일상을 채우는 자극 속에서 느리게 흘러가는 미술 작품들과 최대한 오래 머무르면서 나만의 고민을 끌어안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전시를 관람하고 미술 작품을 감상하면서 미술의 해답을 찾으려 하지만, 저는 전시 관람을 통해 도파민에 젖은 일상과 밸런스를 맞추는 데에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누구든 미술을 통해, 또 예술을 통해 느림의 미학을 받아들이게 된다면 한번 경험해볼만한 특별한 시간을 보낼 수 있으리라고 믿습니다.



좋은 전시, 좋은 전시 해설가 ‘김찬용’



오래 전 한 전시회의 전시 해설을 맡았습니다. 사람들이 점프하는 사진으로 위로와 힐링을 건네는 전시였는데요, 한 관람객이 “안내 잘 들었습니다.”라는 말과 함께 다녀갔습니다. 2주 정도 뒤에 그 관람객이 다시 와서 제 해설을 들었습니다. 그때는 전시를 참 좋아하신다고 생각해서 인사를 건넸죠. 관람객은 전시를 보고 2주 사이에 퇴사를 결정했다고 말했습니다. 전시 해설을 통해 자극을 받아 원래 직장을 퇴사하고 더 늦기 전에 내가 하고 싶었던 것에 도전하는 용기가 생겼다고 했습니다. 사실 처음에는 조금 부담스러웠습니다. 제가 진행한 잠깐의 전시 해설을 듣고 삶의 큰 결정을 하는 것이 당황스럽게 느껴지기도 했죠.

하지만 전시와 전시의 해설이 누군가의 삶에 자극제가 되어 열정을 가지고 후회하지 않을 선택에 영향을 주었다는 것은 보람과 함께 기분 좋은 책임감을 가져다 주었습니다. 그 마음으로 꾸준히 노력한 것이 결실을 맺어 요즘에는 해외의 여러 전시의 해설을 맡으며 꿈에만 그리던 전시들을 관람하기도 합니다. 앞으로도 제가 좋아하는 예술가의 전시를 직접 안내할 수 있는 기회, 또 그런 전시를 안내하면서 새로운 전시를 관람할 수 있는 기회가 찾아오길 기다립니다.





김찬용 전시 해설가는 ‘목적에 집중하는 대신, 자신의 느낌과 감각을 믿고 전시를 관람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예술을 진정으로 즐길 수 있는 길로 천천히 안내하는 것이죠. 그의 말처럼 모든 것이 빠르게 변하고 새롭게 탄생하고 있는 지금, 느림의 미학을 따라 천천히 사유하고 멈춰서 고민하는 시간이 필요하지는 않나요? 이번 주말에는 느림의 미학을 느낄 수 있는 전시회에서 나의 감각에 집중하며 천천히 걸어보는 것은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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