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랜 시간 바라온 ‘앵커’라는 꿈을 이룬 사람이 있습니다. 올해 3월, KBS 7기 장애인 앵커로 선발된 시각장애인 앵커 허우령님입니다. 매일 정오, KBS 뉴스를 통해 세상과 소통하고 있는 허우령 앵커를 Media SK가 만났습니다.
세상과 소통하는 매개체를 발견하다
허우령 님은 14살 어느 날, 갑자기 자고 일어나보니 눈이 안보이게 되었다고 합니다. 앞이 뿌옇게 보이지 않는 증상으로 1년 정도 병원생활을 했지만 명확한 이유는 알 수 없었고 시신경염으로 의심된다는 소견과 함께 시각장애를 얻었습니다.

“어렸을 때는 그림을 그리는 걸 가장 좋아했어요. 하지만 시각장애 때문에 그림을 계속 그리기는 어려웠습니다. 어떤 일을 해야 할지 고민을 하다가 시각장애 특수학교의 선생님에게 방송부 활동을 제안 받았습니다. 방송부 활동에서 목소리로 사람들과 소통하는게 얼마나 매력적인지 알게 되었어요. 그 후부터 아나운서가 되고 싶다는 꿈을 꿨습니다.”
아나운서에 대한 꿈은 사람과 소통하고 싶은 허우령 님의 소망에서 시작되었습니다. 그림으로 세상과 소통하는 화가의 꿈은 아쉽게도 이루지 못했지만 목소리라는 새로운 매개체로 소통을 꿈꾸기 시작했죠. 허우령 님의 유튜브 채널 ‘우령의 유디오’ 또한 사람들과 꾸준히 소통하기 위한 허우령 님의 공간입니다. 세상에게 허우령 님의 목소리로 진심을 전하다 보니 어느새 13만 명의 구독자가 모여 허우령 님의 꿈에 따뜻한 지지를 보내고 있습니다.
오랫동안 간직하던 꿈, 현실이 되다

“사실 KBS 장애인 앵커에 대한 공고가 갑작스럽게 나와서 준비할 수 있었던 기간이 길지는 않았어요. 최선을 다해 준비했지만 떨어지면 어떡하지, 라는 생각이 들었죠. 딱 30살까지는 지치지 말고 도전해보자고 마음을 먹었습니다. KBS에서 장애인 앵커를 2년에 한번씩 모집하니까 앞으로 3번 안에 합격이 안되면 과감하게 다른 길을 찾아보자고 결심했어요.”
비시각장애인과 달리 시각장애인에게는 일상 속 어려움이 많습니다. 우리가 쉽게 보는 뉴스를 읽는 것도 어려울 때가 있는데요, 보통 화면을 읽어주는 보이스 프로그램을 활용해 화면의 활자를 읽지만 접근성이나 호환이 좋지 않아 마음처럼 잘 작동하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허우령 님도 같은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앵커를 준비하기 위해 연습할 뉴스 원고를 다운로드 받는 것도 쉽지 않았고 장애인 앵커에 대한 조언을 받는 것도 어려웠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허우령 님은 전직 아나운서였던 교수님과도 끊임없이 이야기하고 자신을 도와줄 수 있는 사람들을 찾았습니다. 스피치 학원을 소개받아 복식호흡과 발성을 손으로 느끼며 연습했습니다. 그렇게 허우령 님은 10년 동안 포기하지 않고 간직하던 꿈의 문을 두드렸고 KBS 제 7기 장애인 앵커로 선발되었습니다.

“KBS 장애인 앵커는 KBS 뉴스 12의 생활뉴스를 맡습니다. 시각장애인들은 프롬프트를 읽을 수 없어서 점자 정보 단말기를 활용하고 있는데요, 원고 내용을 점자로 보여주는 기기입니다. 기자님에게 받은 원고를 점자 정보 단말기에 넣어서 빠르게 읽어보면서 연습하고 그날의 뉴스에 대해 한마디를 남기는 앵커 리포트 멘트도 연습합니다. 내용 전부를 외울 수는 없지만 핵심 주제에 대해서는 정리해서 기억하려고 합니다.”
이제 3개월 차 신입 앵커로 경험을 쌓아가고 있는 허우령 님은 후천적 시각장애인으로 점자를 빠르게 읽지는 못합니다. 그래서 뉴스 진행을 위해 연습하는 것이 필수적이죠. 안내견 하얀이와 함께하는 대중교통 출퇴근길부터 원고를 점자로 빠르게 읽는 것까지 현실로 만난 꿈에 대한 허우령 님의 노력이 담겨있습니다.
장애인과 당연하게 마주치는 사회

허우령 님의 모든 걸음을 함께 하는 안내견 하얀이는 뉴스 스튜디오에서 함께하기는 어렵다고 합니다. 스튜디오 내부에 장비도 너무 많고 전기선도 복잡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지난 4월 20일, 장애인의 날은 달랐습니다. 장애인의 날을 맞이해서 안내견에 대한 소식을 하얀이와 함께 전하게 된 것입니다.
“안내견에 대해서 아직도 많은 편견이 있습니다. 공공장소에서 출입이 거부당하기도 하고 어떤 분들은 저희 하얀이가 힘들어 보인다고 불쌍하다는 이야기를 하시기도 해요. 그럴 때 미디어에 안내견이 더 많이 보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안내견의 평범한 일상부터 안내견이 거부당했을 때 왜 거부당했는지, 어떻게 조치되었는지 까지 더 많은 분들이 안내견에 대해 알게 되면 좋을 것 같아요.”
허우령 님은 소외된 사람들의 목소리를 전하는 앵커가 되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습니다. 소외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다른 사람들에게 더 잘 들려드리고 싶다는 것입니다. 특히 장애인이라 어려워하고 낯설게 느끼는 사회 분위기를 해소하는 데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고 싶다고 합니다.

“제가 장애인 앵커가 되면서 많은 관심을 받았지만 꿈을 이루게 된 제 모습을 대단하거나 멋진 것으로만 보지는 않으셨으면 좋겠어요. 누군가 꿈을 이루는 것처럼 저도 제 꿈을 이뤘을 뿐이고 오랫동안 하고 싶었던 앵커가 된 것일 뿐이니까요.”
허우령 님은 ‘세렌디피티’라는 단어를 가장 좋아한다고 합니다. ‘세렌디피티’는 우연히 찾아온 기회를 잡아서 나만의 행운으로 만든다는 뜻을 담고 있는데요, 허우령 님은 시각장애도 새로운 삶을 가져다 준 하나의 기회이고 그 기회를 잡아서 결국 앵커라는 행운을 잡았다고 말했습니다.
모든 사람에게는 특성이 있듯이 허우령 님의 시각장애 또한 허우령 님의 특성입니다. 우리 사회가 어떤 특성을 가지고 있든 자신의 꿈을 이룰 수 있도록 허우령 님의 부드러운 목소리가 더욱 널리, 더욱 오랫동안 퍼지길 MediaSK가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