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는 일상의 많은 순간을 음악과 함께 합니다. 출퇴근길 좋아하는 가수의 노래를 듣고, 라디오, 드라마와 영화, 그리고 SNS를 통해서도 여러 종류의 음악을 듣곤 하죠. 이렇게 음악과 뗄 수 없는 삶을 살면서도, 유독 우리가 자연스레 접하기 어려운 음악의 한 장르가 있습니다. 바로 ‘국악’입니다. 특별히 관심을 갖고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면 국악은 어렵고 낯설게 느껴질 텐데요.
이에 한 젊은 소리꾼이 대중과의 거리를 좁히고 우리 판소리의 매력을 알리기 위해 발 벗고 나섰습니다. 해마다 판소리를 완창하고, 동시에 <복면가왕>, <국가가 부른다>, <풍류대장> 등 유명 TV 프로그램에 출연하며 우리의 소리를 널리 알리고 있는 국악인 김주리 님을 Media SK가 만나보았습니다.
즐기다 보니 자연스럽게 재능이 된 소리
어린 시절 우연히 부모님 손잡고 따라간 판소리 학원에서 <사철가>를 즐겁게 따라 부르던 다섯 살 아이는 3년 뒤 <수궁가>를 완창*하게 됩니다. 이어 열 살 되던 해에는 <수궁가>와 <심청가>를 9시간 20분 동안 연창해, 판소리로는 최연소로 기네스북에 올랐죠. 어릴 때부터 늘 소리 옆에 있었던 소녀 명창 김주리 국악인은 26년이라는 세월 동안 단단하게 소리꾼 자리를 지키며 명실상부한 국악계의 실력자가 되었습니다.
*완창(完唱): 음악 판소리 한 마당을 처음부터 끝까지 부르는 일

“자연스럽게 소리를 계속해 오다 보니 8살에 첫 완창도 하고, 부모님과 함께 기네스북에도 도전하게 되었어요. 중간에 몇 년 유학 생활을 했는데요, 그동안에도 소리는 계속했습니다. 소리는 일주일만 쉬어도 처음으로 돌아가는 기분이거든요. 늘 흥얼거리면서 연습하고, 누군가에게 저를 소개해야 할 때면 늘 우리 소리를 들려주었죠.”
김주리 국악인은 얼마 전 <춘향가> 완창 앨범을 발매했는데요. <심청가>, <적벽가>, <수궁가>, <흥부가>, <춘향가> 이 판소리 다섯 바탕을 매년 하나씩 완창해 내며 꾸준히 소리에 대해 연구 중이라고 합니다. 판소리를 완창하는 것은 국악인들에게도 쉬운 일은 아닌데요. 방송 프로그램 <복면가왕>, <풍류대장> 등에서 현대음악과의 크로스오버로 대중의 주목을 끈 것과는 별개로 온전한 전통 소리를 보존하고 이어가야 한다는 생각에서 비롯된 결심이죠. ‘정통 소리꾼 김주리’로서의 뚝심과 고집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소리 자체는 이미 어렸을 때 다 배웠던 겁니다. 하지만 어릴 때와 30대인 지금의 소리는 디테일의 차이가 굉장히 크죠. 이런 것을 좀 더 완성도 있게 마스터하는데 걸리는 시간이 1~2년 정도 되는 것 같아요. 그런데도 굳이 하는 이유는 제가 우리 전통 소리를 업으로 하며 계승하겠다는 신념을 지키기 위해서입니다. 저의 정체성을 놓지 않기 위한 스스로와의 약속이죠.”
시간이 켜켜이 쌓여 만들어 낸 감동의 소리 ‘판소리’
<춘향가>의 경우 판소리 한바탕이 무려 6시간에 달하는데요. 공연을 준비할 때는 6시간이 아닌 그 배에 달하는 양을 연습한다고 합니다. 혼자 연습하는 것과 무대에서 소리 하는 것은 체력 소진의 차이가 크기 때문입니다. 방대한 양의 판소리 사설은 틈날 때마다 외우며 이어 붙입니다. 관객의 감정을 들었다 놓았다 하며 감동을 주는 목소리는 그동안 켜켜이 쌓아온 연습의 시간에서 온 것이죠. 특히 판소리에서 슬픔이 밴 음색, ‘애원성’은 최고의 성음으로 인정받는데요. 김주리 국악인의 소리는 맑으면서도 슬픈 애원성 부분에서 탁월한 기량을 보여줍니다.

“판소리는 소리꾼 한 명이 다양한 역할을 하며 관객들에게 이야기를 전달하는 장르에요. 어떻게 보면 1인 뮤지컬이나 오페라와도 비슷하죠. 온몸으로 감정을 표현하는 ‘발림’을 비롯해 절절하고 애틋한 느낌을 잘 내기 위해서는 그 인물이 되어 몰입하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춘향이가 어떤 마음으로 이별했을까’, ‘심청이는 어떤 마음으로 몸을 던졌을까’그런 것들을 상상해 보고 그 순간만큼은 인물에 녹아들어 가기 위해 집중하죠.”
<춘향가>의 ‘쑥대머리’ 같은 대목을 들으면 자기도 모르게 눈물이 난다는 관객들이 많습니다. 그만큼 판소리가 우리 삶의 희로애락을 풍부하게 담고 있다는 뜻인데요. 알면 알수록 웃음이 터질 만큼 재미있고, 슬플 땐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흐르는 판소리. 김주리 국악인은 그런 감정들을 관객과 공유하는 것이 판소리의 가장 큰 매력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어렸을 때는 가르쳐 주시는 대로 불렀지만, 지금은 소리 한 대목 한 대목 할 때마다 책임감을 굉장히 많이 느껴요. 무대에 서면 제 소리에 빠져들고 함께 호흡하는 관객들의 반응이 생각보다 잘 보이는데요. 그래서 판소리를 할 때마다 관객분들에게 국악이 좋은 추억이 될 수 있도록 완성도 높은 소리를 만들기 위해 좀 더 노력하게 됩니다.”
정통 소리를 알릴 수 있는 무대라면 그 어디라도

김주리 국악인은 2021년 말 종영한 TV 프로그램 <풍류대장-힙한 소리꾼들의 전쟁>에 출연해 대중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겼습니다. 블랙핑크의 <휘파람>을 판소리 버전으로 재해석해 신선한 충격을 안겨준 것인데요. 날개가 달린 것처럼 자유자재로 완벽하게 노래했다는 평과 함께 모든 심사위원의 합격 버튼을 받았습니다. 또 <국가가 부른다> 국악인 특집, <복면가왕> 등의 무대에서 대중가요와 국악을 넘나드는 새로운 장르로 다채로운 매력을 보여주었죠. 김주리 국악인은 판소리와 현대 음악의 크로스 오버를 통해 다양한 무대를 시도하고, 여러 커버 영상을 올리며 활발히 활동을 이어나가고 있습니다.

“아직까지는 판소리와 관객들 사이에 벽이 조금 높은 것 같아요. 크로스오버 음악은 그러한 벽을 허물고 전통 소리로 넘어올 수 있는 길을 만들어 주죠. 그렇지만 크로스오버 음악은 새 장르로 여기고 발전시키되, 판소리는 그 원형으로서 정통성을 가지고 존재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소리꾼과 북만으로 이루어진 전통 판소리는 그대로 훼손되지 않고 보존되어야 하죠. 요즘은 옛 선생님들이 유지해 온 소리들이 많이 옅어지고 있어요. 새로운 장르는 장르대로, 소리는 소리대로 그 맥을 이어가면 좋을 것 같습니다.”
지상파 음악 방송과 예능, 창극 등의 무대를 통해 국악을 조금 더 친근하게 알리는 김주리 국악인. 무대가 없으면 정통 소리를 알릴 기회도 없기 때문에 사명감을 가지고 이리저리 바쁘게 오가고 있다는데요. 국악은 특히 해외에 나갔을 때 반응이 심상치 않다고 합니다.
“해외에 나가면 남녀노소 할 것 없이 현지인 분들의 반응이 정말 좋아요. 작은 체구에서 어떻게 저렇게 크고 깊은 성량이 나올까, 어떻게 저런 기교를 할까 신기해하시죠. 기립박수는 물론이고요. 그게 너무 자랑스럽고 행복합니다.”

김주리 국악인은 소리꾼으로서 무대에 올라 관객석의 반짝이는 눈빛을 바라보는 것이 가장 벅찬 순간이라고 말합니다. 판소리 자체가 워낙 힘을 많이 쏟는 음악이기 때문에 무대를 마치면 기진맥진해 쓰러질 정도인데, 관객들의 자연스러운 추임새와 박수 소리는 말 그대로 소리꾼에게 ‘소리 할 맛 나는’ 행복을 전해주는 것이죠.
“무대를 하면서 울고 웃고 감정의 교감을 관객분들과 서로 나눌 때, 저의 감정들이 고스란히 전해져 소통하고 있다고 느낄 때 가장 뿌듯해요. 앞으로도 국악이 지닌 본질과 가치를 소중히 여기면서 가능한 많은 무대에서 국내외 관객분들을 만나 반갑게 인사드리고 싶습니다.”
미국의 문학 시인 헨리 워즈워스 롱펠로는 “음악은 세계 공용어”라고 말했습니다. 국가와 문화를 넘어 아름다운 멜로디, 가슴을 울리는 소리에 사람들은 똑같이 감동하고 전율하죠. 깊이와 독창성을 자랑하는 풍부한 매력의 우리 국악도 머지않은 미래에 세계 곳곳에서 K-POP 만큼 크게 울려 퍼지기를 소망해 봅니다. 관객이 있는 무대라면 어디든 뛰어가서 한바탕 소리마당을 펼치고 있을 김주리 국악인의 한가락을 들어보며 Media SK도 응원하겠습니다.